<포식자와 피식자의 합창>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굳이 진흙을 밟고 바위를 지나 정상을 향해 오르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등산은 고행처럼 보였다. 특별한 의미가 담기지 않은 채 오르는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때 이해하지 못한 오름이, 언젠가부터 내가 동경하는 바가 되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답은 없다. 그저 무작정 오르고 싶은 어떤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흐릿한 하늘 속에서 나는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개가 희미하게 나무 사이로 퍼지며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흙냄새가 짙었고 나뭇잎 사이에 맺힌 이슬이 간간이 볼에 묻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나는 홀로 숲속에 있었다.
숲이 깨어나는 소리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시작된다.
마치 누군가 조율하듯 천천히 소리의 막이 오르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미세한 바람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잎사귀가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생명이 움직이는 소리가 더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에 분명하게 들려오는 건 새소리와 벌레 소리였다.
새소리는 높았다. 맑고 경쾌했다. 벌레 소리는 낮았다. 끈질기고 때로는 떨렸다.
언뜻 생각하면 둘 사이에는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는다. 숲속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잔혹한 현실이다. 그러나 내 귀에 울려 퍼지는 두 존재의 소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관계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의외의 조화였고 완벽한 합창이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언제나 아름답다. 다만 왜 아름다운지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를 들었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숲속을 날아다녔을 테고, 벌레는 자신의 생을 연장하기 위해 나무 사이를 기어다녔을 것이다.
둘의 처지는 극명하게 대비되지만 그들의 소리는 어느 지점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다.
생과 사의 경계가 교차하는 순간이자 비극과 희극이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나는 산 중턱에 있는 정자에 잠시 앉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한 햇빛이 파편처럼 쏟아졌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합창은 내 생각을 깊이 파고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삶 또한 숲속 자연과 마찬가지 아닐까.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패자가 된다. 그런데도 도시를 멀리서 바라보면, 치열한 싸움 속에서 묘하게 아름다운 질서와 조화가 보이기도 한다.
벌레 소리와 새소리는 마치 의도한 듯 서로를 보완해 주었다.
소리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이 깨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리는 절묘하게 맞물려 있었다. 숲은 생존과 죽음, 그리고 삶이라는 거대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였다.
나는 다시 일어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숲속의 미묘한 균형과 화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간은 수많은 갈등과 욕망 속에서 살고 있다. 때로는 그것이 추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조차 아름다운 화성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햇살은 선명해졌고 숲의 소리는 멀어져 갔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높은 건물과 복잡한 도로가 보였고 그 위를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시의 소리는 숲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그러나 내 귀에는 도시의 소리 역시 또 다른 화음으로 들렸다.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나는 오늘 그 이유를 조금 더 명확히 알게 된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삶을 바라보기 위해 산에 오른다.
삶을 이루는 모든 갈등과 대립, 아름다움과 추함을 함께 이해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세계의 하모니를 발견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나는 산에서 내려오며 모든 것에 감사했다. 숲의 소리, 도시의 소리, 그리고 삶이라는 놀라운 조화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