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과욕>
어둠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밤이면, 나는 오래된 극장의 영사기처럼 벽에 그림자를 비춰보곤 했다.
그림자는 야생마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는 열정의 형상이었다가, 이내 모든 것을 삼킬 듯 검은 아가리를 벌린 과욕의 모습으로 일그러졌다.
책상에 홀로 기댄 채, 나는 두 개의 그림자가 내 안에서 벌이는 위태로운 곡예를 숨죽여 지켜보았다.
순수함의 비율이 높았던 어린 날의 나는, 투명한 유리알 같은 열정이 충만하게 차 있었다.
목표라는 단어의 무게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좋아서 밤을 지새웠다.
책장을 넘기며 마주했던 풍경들과 연필심이 닳도록 채워 넣던 백지의 설렘들.
순수한 열정이 건네는 희열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찬사를 받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내 열정의 방향을 슬며시 바꿔놓기 시작했다.
목적 없는 순수함 대신 타인의 눈길과 인정이 중요해졌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욕망이 새롭게 열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만의 희열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혹은 그들이 멋대로 던지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인생을 불태웠다.
성공은 달콤하지만 찰나에 불과했다.
갈증은 지독해졌고, 더 크고 화려한 성공을 위한 욕망이 독버섯처럼 싹트기 시작했다.
투명했던 열정이 급속도로 혼탁해지자 과욕은 굴레가 되어 점점 나를 옥죄었다.
타인의 평가가 내 존재 가치를 정의하는 순간부터 결국, 영원한 갈증에 시달리는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염원했던 결과를 손에 쥐었을 때조차 행복하지 않았다. 이미 시선은 다음 목표물을 향해 있었다.
작은 성취는 과욕의 불꽃을 더욱 키우는 기름이었다. 칭찬이 달콤해질수록 욕망은 깊어져갔다.
나는 어느새 본질을 잊고 다른 사람의 눈동자에 비친 허상에 매달려 연명하는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끝없는 욕망이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번아웃이다.
갈망하던 성공의 끝에는 황량한 폐허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난 후, 내게 남은 것은 텅 빈 내면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랜 시간을 침묵 속에서 보냈다.
세상의 평가와 타인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나 완벽하게 홀로된 시간.
처음에는 두렵고 막막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잃어버렸던 스스로의 윤곽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딱히 거창한 깨달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의 향기, 낡은 공원 벤치에 앉아 바라보던 이름 모를 들꽃, 아무도 읽지 않을지도 모를 나만의 글들. 지극히 사소하고 작은 것으로부터 해답을 얻었다.
이 사소한 것들이 나에게 안겨준 평온함은, 과욕이 선사했던 그 어떤 화려한 성취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나는 평온함 속에서 오래전 잃어버렸던, 혹은 스스로 외면했던 그날의 열정을 되찾았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불꽃이 아닌 내면 깊은 곳에서 은은하게 타오르는 온기였다.
누구의 인정도 필요치 않고 그저 나 자신이 존재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고요한 열정이었다.
열정은 순수함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과욕을 벗어던지고 나니 진정한 의미의 열정이 다시 보였다.
그렇다고 나는 과거의 어리석었던 질주와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욕망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서 있는 작은 언덕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두웠던 그림자를 떨치고 고요한 열정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났다.
열정과 과욕.
열정은 나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열망이며, 과욕은 타인의 기준에서 비롯된 잘못된 욕망이다.
열정과 과욕의 경계는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늘 주의하며 걸어야 한다.
욕망이라는 늪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 나는 햇살의 따스함과 노을의 장엄함 같은 일상의 기쁨들을 부표처럼 끌어안는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만족을 찾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삶은 고요하고도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처럼 내 앞에 놓여있다.
나는 강을 따라 흘러가며 매 순간의 풍경을,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놓치지 않고 음미할 것이다.
과욕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폐허 위에 비로소 진정한 열정의 씨앗이 뿌려지고 평화라는 이름의 꽃이 피었다.
그렇게 나는 오랜 방황 끝에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