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부는 바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았다.
창문을 반쯤 열었더니 뜨거운 기운이 집 안에 스며들었다.
자연스럽게 곁에 놓인 어쿠스틱 기타를 집어 들었다.
기타는 체온을 알고 있는 듯 금세 손바닥을 따라 몸을 덥혔다.
며칠 전 새로 갈아놓은 줄이 아직 낯설었다.
처음 기타를 샀을 땐 참 쉬워 보였다.
유튜브에 가득한 연주자들의 손길은 마법처럼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막상 기타를 들고 손을 얹어 보니, 그것이 얼마나 치밀하고 예민한 세계인지 여실히 알게 되었다.
운지가 조금만 잘못돼도 소리는 억세게 울렸다.
넥을 더듬을 때마다 나는 기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이 되었다.
기타는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다만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지판을 누르고 현을 튕기며 기타의 심기를 조심스레 살폈다. 익숙지 않은 화음이 매일 방에 번지며 불안과 미숙함을 까발렸다.
처음 F 코드를 시도하던 날, 악명 높은 코드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무너졌다.
손가락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하염없이 시도했지만, 손끝에 깊게 팬 현 자국만 남기고 울림은 침묵했다.
기타와의 관계는 가까우면서도 참 멀다.
곁에 두고 매일 보지만 정작 마음속 깊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한다.
기타에 나를 온전히 드러내기엔 아직 쑥스러웠고 기타 역시 나를 조금은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끈질기게, 그 낯선 감촉과 소리의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코드 하나를 누른다.
열기가 그득한 한낮의 공기를 뚫고 맑은소리가 방 안을 작게 울렸다.
짧지만 아름다운 울림이다. 나는 손끝을 보았다. 투명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희미했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나는 손끝이 바람을 일으키는 순간을 찾아 조금씩 기타와 친해졌다.
여전히 능숙한 연주자처럼 자유롭게 손을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이전처럼 마냥 낯설고 두렵지는 않았다.
매일 오후 기타와 조금씩 가까워졌다. 천천히 더 많은 것을 서로에게 허락했다.
작고 서툰 바람이 프렛 위에서 나를 위로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줬다.
기타를 배운다는 것은 아주 느리게 손끝의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다.
아직 기타를 자유롭게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눈치 보지 않고 과감하게 서툰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기타를 안는다.
어설픈 손가락이 현 위에 닿자, 또다시 작고 부드러운 바람이 피어난다.
방 안 가득 바람이 퍼져 나간다. 나는 아직 이 바람의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다만 끝이 어디든 간에 최초의 바람은, 포기하지 않는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