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맘카페 익명방에 이런 질문을 종종 본다.
'왜 사세요?'
존재의 이유를 묻는 철학적이고도 심오한 질문.
엄마들의 댓글은
죽지 못해 살아요. 태어난 김에 살아요.
자식 때문에 살아요. 전 돈 많아서 사는 게 즐거워용. 등등.
걔 중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이 세상에 왔대요~! 하는 예쁜 댓글도 있다.
그중 누군가가 적은 댓글이 눈길을 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야 한대요!
오오오~~~!! 멋진데.
처음엔 격하게 공감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그 답변은 궤변이란 생각이 든다.
왜 사는지에 대한 주제가 명확해야 어떻게!라는 디테일이 나오는 거지!
그래서 내가 30대였던 어느 날.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결론을 스스로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사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세상에 왔고,
얼렁뚱땅 결혼해서 얼떨결에 지금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고,
그동안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지만 지금부턴 달라.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명확하게 하자!
그래서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론은 아들 둘 잘 키우자. 였다.
너무 뻔한 결론이긴 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내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고의 결론이었다.
뻔하지만 위대한 결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당시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밖에 없더라.
잘 키운다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잘 살아낼 수 있는 성인으로 키우는 것'
이것이 나에게는 잘 키운다의 정의였다.
자기 자신과, 딸린 가족들, 나아가서는 약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힘이 있는 어른으로 키우자.
그 힘이 경제력이든, 권력이든, 기술이든, 고매한 정신력이든...
힘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을 첫 번째 나의 소명으로 정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첫 번째 소명이 완성되고 나면,
나를 나답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죽어야겠다. 생각했었다.
얼마 전,
막내의 대학 입시가 끝이 났다.
나는 나의 카톡 프로필에 숙제 끝이라고 적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열심히 답을 찾으려 했던 시간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정시로 입시를 치렀던 큰아이의 경험과
수시로 입시를 치렀던 작은아이의 경험도 함께.
하찮은 사람의 하찮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소시민의 소시민에 의한 소시민을 위한 이야기인지라
누군가에겐 깊은 공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로.
아이를 키우며 아들들에게 종종 했던 말을
이제 나에게 스스로 해주련다.
누가 뭐라 하든, 너 고생 많았어. 칭찬받아 마땅해.
이젠 아주 오래전 땅속깊이 묻어 두었던 나의 꿈을 꺼내서 윤이 나도록 닦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