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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화 Jan 21. 2024

뜻밖의 동기부여

보이즈 비 엠비셔쓰!

10여 년 전. 어느 단란한 저녁시간.

작은 아들이 밥 먹고 있는 형을 유심히 보더니

매우 경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형아 턱이, 아빠 턱이랑 또옥! 같이 생겼어!!

(그렇지, 예전부터 아빠랑 데칼코마니 같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지.)


이때, 단 1초의 공간도 없이 큰 아들이 짜증 난 듯 말했다.

"넌 엄마 닮아서 시꺼멓거든!"

......

순간 큰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 모두 얼음!

입으로 들어가려던 숟가락이 모두 급정지를 한다.

큰 아들의 숟가락만 여전히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생각했다.

'아빠 닮았다는 말이 그렇게 싫은가?

아빠가 선크림을 안 바르고 조기축구를 오랫동안 해서 그렇지,

젊을 땐, 나름 아이돌상이었는데...

그나저나 이 시키, 문과 보내야 돼.

한 마디로 세 명을 멕이네?

그리고, 내가 까맣다면 얼마나 까맣다고.

까만 거 아니거든. 좀 찐한 노란색이거든!

와~이런 테러를 일으키고도 혼자 태연한 거 봐...'


정적을 깨는 남편의 모양 빠진 한 마디가 짠하게 들린다.

"나도 별로 기분 안 좋거든. 흥!"


얼마 후에 학교에서 큰 아들이 반 대표로 토론대회를 나간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이 옳은가?'

라는 주제라고 했다.

말 길게 안 하고, 한  문장으로 여러 사람 보내는 것이 특기인데

어련히 잘하겠어.

아니나 다를까, 우승했다.


토론대회 상장을 받아오던 날,

아들에게 물었다.

"넌? 꿈이 뭐니? 나중에 어른되면 뭐해서 먹고살 거야?"

"몰라. 생각 안 해봤는데."

"엄마 생각엔 말이야.

네가 사람들 설득하고,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하고,

발표하는 거 좋아하니까, 검사나 변호사 같은 법조인 어때?"

(말 한마디로 사람 여럿 멕이는 것도 잘하고... 이, 이 말은 참자)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

그렇게 우리 장남의 꿈은 법조인이 되었다.


10여 년 전. 또 다른 어느 단란한 저녁시간

돼지국밥집에서 외식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남편이 무심코 말하길

"자기야. 신문에서 봤는데,

지방 어디더라? 거기는 의사가 귀해서

월급을 2000만 원 준다고 해도 구하기가 힘들대"

"아. 그래?

와~ 의사들은 좋겠다"


국밥 한 술을 입에 넣으려던 작은 아들이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이, 이천만 원요?"

"응. 이천만 원 이래"


아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 마디 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혹시... 자네... 의사해 볼 생각 없나?"


별다른 대답 없이 '와~~' 하며 밥을 먹던 아이의 표정에서

나는 읽고 말았다.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하는 작은 아들의 마음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그렇게 우리 막내의 꿈은 의사가 되었다.


뭐. 물론 상당히 세속적이고 자본주의 사회이념에 충실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꿈을 심어주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아이의 꿈이 모두 엄마의 욕망투여되었다는 사실도.


사실, 아이도 어른인 나도 무슨 꿈을 꾸어야 할지 목표를 잡아야 할지 모른다.

내가 법조인이 아니니 그 세계를 모르고

의사가 아니니 역시 그들의 세상을 겪어본 적 없으니 어찌 알까.


다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은 알겠다.

그래서 많은 원초적인 즐거움들을 희생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긴 시간 끊임없이 노력을 쏟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인 것도 알겠다.


시작은 비록 세속적이거나 뜬금없는 이유였으나

정해진 꿈은, 아이와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릴 때,

내가 가고 싶은 곳. 가야 할 곳을 정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표가 있고, 꿈이 있어서 공부를 하는 것과

그냥 하는 것과는 실행강도가 다르다.


내가 아이들에게 법조인이나, 의사라는 꿈을 제시한 것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 가장 높은 목표였다.

문과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아이는 서울대 로스쿨을 가고

이과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아이는 서울대 의대를 간다고 들었다.

가장 높은 목표를 세우면

혹시, 아이가 거기에 닿지 못하더라도

그 근처 어딘가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 참 괜찮은 일.

어쩌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라는 것도 깨닫지 않을까.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내 새끼라고 못할 건 뭔가?!'

뭐... 우리한테 주어진 패가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으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리저리 부딪히며 방법을 찾아보는 거지 뭐.

그러려면 일단 아이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동의가 있어야 나의 잔소리가 먹힐 것이다.

그래서 아들들한테 물었다.


'자네, 혹시 법조인 해볼 생각 없나? 자네 혹시 의사 해볼 생각 없나?'


아이들의 동의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받는 것이 좋다.

머리가 굵어지면 나의 제안에 토를 달 확률이 높다.




꿈은 꾸되, 유연하면 된다.

세상에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하는 것! 은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길을 가다 이길 아니다 싶으면 방향을 틀 수도 있고,

죽을힘을 다해 갔는데, 목적지에 닿지 못한다 해도

열심히 살아왔던 그 과정은 나를 내 아이를 성장시킬 것이다.


삶을 활공하듯 유영하듯 춤추듯 살 때가 있고,

몰아치듯 살아야 하는 때도 있다.

내가 지금 어떤 시간을 통과하든, 내가 가야 할 목적지는 분명해야 한다.

그 목적지는 바로 내가 꿈꾸고 희망하고 원하는 곳이다.

그렇게 꿈이 있고, 목표가 있어야

사람은 조금 더 삶에 진지해지고, 내게 주어지는 시간을 감사하게 된다.

그건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꿈꾸는 목적지가 없다면

결국 물 위를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나를 둘러싼 외부 환경에 의해

결국 내 운명을 모두 내 맡기는 안타까운 입장이 되어버릴 테니까.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 살벌한 내신 경쟁을 할 때,

울며 불안해하던 아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아들. 성적 안 나와서 의대 못 가면 어때?

공대 가서 더 재밌고 더 좋은 일 생길지 어떻게 알아?

엄마가 지켜본 바, 넌 최선을 다했고, 노력했어.

노력도 해 본 사람이 하는 거야.

적어도 넌 노력이 뭔지, 최선이 뭔지, 열심히 하는 것이

뭔지 아는 아이이기 때문에,

나중에 노점상을 해도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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