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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화 Jan 14. 2024

괜찮아. 안전해.

큰아들 입시이야기 2.

수능전날. 

큰 아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로 나온다.

벌써 새벽 두 시가 다되어가는데...


"엄마. 긴장돼서 잠이 안 와!"


아.

이런 모지리 엄마가 있을까.

혹시 모르니 우황청심환이라도 하나 사놓을 걸.

쌍화탕이라도 한 병 있으면 따땃하게 데워 먹이면 좋을 텐데.

지금 편의점에 가면 있지 않을까?? 뛰어갔다 올까?


"아들. 시험 걱정 돼서 그래?

내일 시험 못 쳐도 돼. 혹시 실력발휘 못하면, 한 번 더 하면 되지.

우리 집안에 재수는 없다!라고 했던 건, 주어진 시간에 열심히 하자는 의미였어.

재수하면 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아니. 엄마.

나는... 내가 내일 시험을 망치더라도, 내 성적에 맞춰서 대학 갈 거야.

난 할 수 있는 걸 다한 것 같아."


그래...

아마 잘할 거야. 

넌, 말 그대로 진인사(修人事)했고 우리는 천명(天命)을 대(待)하면 되는 거야.

결과가 어떻든 엄마는 널 응원할 거야. 엄마도 알거든.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넌 안전해.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왜 그때, 아들에게 안전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말을 제일 편안하게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들은

"나는 안전하다. 나는 안전하다......"

몇 번을 되뇌다  잠이 들었다.


아들이, 당연히 잘 해낼거란 믿음으로 고3 엄마 답지 않게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나.

"엄마. 나 고3이야. 신경좀 써줘."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심하게 아들을 믿었다.

가여운 내새끼.

수시를 버리고, 정시로 대학을 가겠다 맘먹은 이후로 

혼자 자신과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했을까.

시시콜콜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는 아들의 성격에,  

나마저 무딘 생각으로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않은 것 같다.

후회가 밀려온다.



'난 할 수 있는 걸 다 한것 같아.'

그 말은, 엄마 나서울대 합격했어! 라는 말 보다 

나에겐 더 감사하고 벅찬 말이다.

되었다. 그거면 되었다.

신이 너를 위해 어떤 시나리오를 써 두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무엇이든 받아들 용기 있잖아.


수능 당일.

삼선슬리퍼를 신고, 스터디 카페를 가는 복장 그대로 시험장을 들어서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시간이 멈춘다.

오늘 시험 한 번으로, 아들의 미래를 크게 좌지우지할 대학을 결정짓는다.

도박 같다. 러시안룰렛 같다.

내 심장도 이리 뛰는데, 아들은 오죽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을 대충 구겨 넣어 보는데 잘 안들어간다.


시험이 끝날 즈음, 남편이 아들을 데리러 갔다.

차에 타자마자 아들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 내 그릇은 이만큼 밖에 안되나 봐요..."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자기 심장이 퉁.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

"이따가 엄마한테 전화해 줘. 괜찮으니까 너무 낙심하지 말고."


퇴근해서 아들을 만난 아들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역대급 불수능이라, 혼자 못 친 게 아니다.  다~ 못 쳤다.

다 못 친 와중에 그나마 조금 잘 친 편이었다.

"엄마. 채점해 보니까 경찰대학은 충분히 합격할 것 같은데?"

2차 합격까지 한 경찰대학은 수능점수가 50프로나 반영이 되기 때문에 수능성적이 너무 중요했다.

다행이다.


그 해 아들은 수능성적으로, 정시에서 서울대 인문학부, 고려대 경영학과, 경찰대학. 

세 개의 대학에 최초합을 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너무 신이 난 나는 거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행복해했다.

어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던 아들이 묻는다.


"그렇게 좋아?"


"엉. 완전 좋아. 왕신나. 앗싸~. 가오리 납세미 도다리 아구찜! 야호! 꺄르르르르~~"

머리에 꽃만 꽂고 있으면, 광녀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큰 아들은 최종적으로 경찰대학을 선택했다.

사실은 나의 설득이 컸다.

서울대에 가서 또 로스쿨을 준비하며,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위해 

또, 또 쉴 새 없이 공부하는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 아들의 여러 가능성을 미리 닫아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이 원하는 길인지는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니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버려야 하니까.


그 해 겨울.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였다.


아들! 엄마는 너를 이미 국가의 아들로 생각하고 있어. 

대한민국의 걸출한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주지 않으련?


입시를 끝낸 큰 아들은 동생에게 주옥같은 명언 한 마디를 남겼다.

"넌! 절대로! 내신 포기하지 마라. 두고두고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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