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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화 Feb 04. 2024

막내이야기.

신은 둘째들에게 '눈치'라는 아이템을 장착해서 세상에 보내는 것은 아닐까.


단순하고 우직하여 엄마의 잔소리와 호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장남과 다르게,

형이 혼나는 그 순간 작은 아이는 사라지고 없다.

집 안 어딘가에서, 책을 편다거나 무언가를 정리하는 등의 바람직한 행위를 하고 있다.

눈치가 빠르다. 상당히 민첩하다.

어떤 상황에서 형이 혼이 나는지, 엄마가 어떤 상황에서 분노하는지 한 발 뒤에서 학습하고

노련하게 불리한 상황을 모면한다.

그렇게 형이라는 존재는 동생에게 간접경험을 보여주는 일종의 학습 도구가 되는 것 같다.


형의 핍박과 권력행사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며 가끔은 대거리를 하며 달려들기도 하지만

때론 지극히 형의 모습을 동경하기도 한다.

형이 기타를 치면, 자기도 배워야 할 것 같고, 형이 칭찬을 받는 일이 있으면 동생은 한 끝 더

완성해서 기어이 그 칭찬을 자기도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형과 둘만 있을 땐, 형에게 고분고분하다가도 편을 들어줄 엄마 아빠가 근처에 있으면

왕~ 하고 울어버리며, '동생 괴롭히지 말랬지. 동생한테 왜그래!'라는 형이 야단을 맞도록 유도하는

용의주도함이 있다.

그렇게 동생은 부모의 뒷모습이 아니라 형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는 것 같다.


자식들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는 장남이냐, 차남이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고, 나역시도 그랬고 주변에 물어보니 다들 비슷한 듯 하다.

장남이나 장녀에겐 모든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는 공부든 운동이든 뭐든 잘해주길 바란다.

잘 키우고 싶다. 잘 키워야만 한다.


막내는 다르다.

형이 받아쓰기 70점을 받으면, 심각해지며 백점을 받기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막내가 70점을 받으면 '기가 막히네~! 어쩜 이리 잘할꼬?' 칭찬이 튀어나온다.

그렇다. 형은 조금만 못해도 조바심이 나는데, 동생은 그냥 귀엽다.


형은 이 모든 상황이 참 불리하다 생각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그래서 형과 누나들이 어느정도 성장하면 엄마에게 만국공통어처럼 하는 말이

"엄마가 동생을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버릇이 없는거야!"

가 아닐까.

                    


내 눈엔 영원히 아기 같은 막내는 나름 야심이 있는 아이 였다.

형만큼 잘하고 싶고, 형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고작 20개월 차이 밖에 안나는 형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될 때 까지 항상 형이 머리통 하나 만큼은 컸으니 형이라는 존재는 동생에겐 참 크고도 넘기 힘든 존재가 아니였을까.

그래서일까. 막내는 참 지독히도 성실했고, 자신의 실수에 관대함이 없는 것 같았다.

중학교 2학년 첫 시험을 치던 날. 

수학 문제 하나를 실수로 틀렸다며 교복을 갈아 입으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찌나 굵은 눈물을 흘렸던지 바닥에 뚝. 뚝 하고 눈물 떨어지는 소리가 실제로 들렸었다.

역사나, 과학 시험을 준비할 때는, 교과서와 선생님이 준 유인물의 내용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설명을 할 수 있어야 스스로 안다고 생각할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걱정스러웠다.

내 눈에 요령도 없는 것 같고, 저렇게 지엽적인 것까지 공부하면, 양이 방대해지는 고등학교를 갔을 때 과연 해 낼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기우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이 중학교때 배우는 과목과 전혀 다른 것을 배우지 않는다.

중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확장되고 깊이있게 들어가는 것이 고등학교 과정이라 아이가 중학교때 열심히 했던 것은 어디론가 증발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든간에 내가 열심히 했던 것은, 언제 어떻게든 쓰이게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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