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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화 Feb 12. 2024

막내이야기2

얼싸안고 엉엉울었네

어릴적 부터 지독한 성실함을 자랑했던 우리 막내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전 과목 1등급을 받았다. 내신 1.0.

담임선생님께서, 학교 개교이래 처음이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성적이라 하셨고, 원하는 의대, 골라서 갈 수 있을 거라며 축하해주시기도 했었다.

정말 자신 만만했었다(빨리 수능 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서울대 의대.  고려대 의대. 1차 합격 발표일이 있던 날.

두 학교다 1차에서 떨어져 버렸다.

면접을 볼 기회도 잡아보지 못하고.

면접이라도 좀 보게 해 주지.

울 아들 상태 나쁘지 않은데...


익히 들었다. 내신 1.0이어도 지방 일반고는 메이저 의대가 어렵다고.

지방일반고라서 그런가 보다. 지방애들은 지역인재로 의대를 많이 가니까,

서울에 있는 의대에서는 잘 안 뽑아주나 보다.

수능치고 면접 잘 봐서 울산대 의대 가면 되지.

3합 4만 맞추면 부산대 의대쯤은 대문 뿌시고 들어갈 텐데 뭐.


아들도 나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문제는 수능당일.

아이는 3년 동안 받아본 적 없는 성적을 받았다.

엄마... 영어가 89점이야.

3합 4를 못 맞췄다.

믿었던 수학도 1등급이 아니다.

"왜! 왜!"

아들은 바닥에 엎드려 짐승처럼 울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고 말고..."

우는 아들의 등을 쓸며 연신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내 눈에도

눈물이 차서 앞이 잘 안 보인다.


3년. 아니 미치도록 성실했던 12년의 시간이 모두 부정되는 시간.

내 아이는 매번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수능이었는데

시험 칠 때마다, 엄마 나 잘할 수 있겠지? 하며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며 위로를 구했었는데.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공포와도 싸우며 그 많은 시험을 치러 왔던 우리 막내.

내신 1.0을 받기 위해 정말 뼈와 영혼을 갈아 넣을 정도로 열심히 했었는데...


하아...

아들이 알까 봐 껌껌한 욕실에 숨어서, 바닥에 쭈그려 앉아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족히 두 시간은 울었다.

하나도. 하나도!! 괜찮지가 않다.


아이 학교에 어떤 아이는 수능이 대박이 나서 정시로 서울대 의대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신이 있다면, 나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나보다.

별로 깝치거나 어디 가서 잘난 척하거나 그런 적 없는데 왜 미워하는 거지?

아냐. 아들이 수능은 최저만 맞추면 된다고 긴장을 너무 풀었던 탓도 있지.

어떻게 알고, 딱 이런 결과를 받아 들게 하는 걸까.

거, 계산 너무 정확하게 하시는 거 아니요?


'고3이 추석연휴 내내 책 한번 펴지 않았던 건 네가 너무 자만해서 그런 것 같애'

무심코 던진 나의 책망 섞인 한 마디에,

아들은 대성통곡을 하며

"엄마가 내 노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누가 인정해 주는 건데!"

콧물, 눈물을 한 바가지 쏟는다.


보험으로 들어두었던 최저가 조금 여유로운 지방국립대 의대가 하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의대 다 똑같대. 집에서 많이 멀지 않고, 할머니집이랑 외삼촌집. 심지어 고모 집도 가까워.

거긴 방값도 저렴하대.

사촌누나랑 동문 되겠네. 사촌누나 그 학교 간호학과 3학년이야.

아이가 가야 할 학교의 장점을 서른마흔다섯 가지는 만들어서 아이를. 나 자신을. 위로했다.

3년 내내 그렇게 죽어라 했기 때문에 수능을 망쳐도 지방국립대 의대 가는 거야.

그 학교 학생들 대부분 경상도 사투리 쓸 거라서 어설프게 표준말 구사안해도 돼.

의사소통이 많이 원활할 거야.


굉장해! 잘했어...

정말 정말 잘했어...

이제 우리 좀 즐겁자.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아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기타도 밤새 치고, 운전 면허도 따고......

너무 고생했어!


그리고 오늘

문자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입학처였다. 수시 발표가 되었으니 확인하란다.


아 맞다. 한양대.

농어촌자격으로 넣어두었었지.

하루 일찍 발표했네?

3명 뽑는데 120명이 지원해서  40대 1이라는 경쟁률을 자랑했던 곳.

살벌한 경쟁률에 헛웃음이 나며, 에공 수시 원서 한 장 말아좝샀어! 했던 학교.

아들~한양대 발표 났대. 확인 한번 해봐. 심드렁하다.

고려대와, 서울대에서 1차도 합격 못한 경험 덕분에 기대감은 단 1도 없다.

이제는 떨어지는데도 익숙해졌다.


어? 어.... 어?  어!

와~~~ 와와와..!!!!!!!

어라? 아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왜? 왜? 왜?

뭔데 뭔데? 뭔데?


"엄마. 나 한양대 의대 붙었어!!!"


"꺄아아아아악~~~~~!"


손에 든 티브이 리모컨을 냅다 던지고 아들에게 뛰어갔다.

괴성을 동반한 울음이 터져 나온다.

그동안의 서러움이 한 번에 날아간다.

"아이고. 내 새끼. 얼마나 마음고생 심하게 했는데, 고생했다. 장하다.

한양대가 사람 볼 줄 아네!"

아들을 끌어안고 꺽꺽대며 울었다.

꿈을 꾸나? 기적이 이런 건가?

나의 괴성에 놀란 고양이가 와서, 이 양반 맛이 가버린건 아닌가하고

내 얼굴에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는다.


아. 입시가 이런 거구나.

알 수 없는 변수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가고,

당연한 것이 없는 것이 입시구나.

갑자기 한양대가 우주최고의 명문대로 보인다.


아들!! 너의 심장을 애교심으로 가득 채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니자.

오늘은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던 날 중에 하나로 기억될 거야.

축하해. 축하해. 우리 막내 브라보~~~!!


*이 글은 네이버카페 레몬테라스에 제가 올렸던 글인데, 인기글로 등록되었던 터라 약간 수정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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