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 앵글, 그리고 디 아더스
"실장님아, 102동 1901호 이사짐 다 실어가는 지 확인좀 하고 와"
몇 일전 부터 기분이 이상해서 실장님에게 관리사무소에 들러 1901호 전출및 이사예약이 되어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었는데, 퇴근길에 알아보겠다는 실장님의 말에 '그러자' 해놓고선 나도 실장님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잔금일인데 당연히 이사짐 차가 와 있겠지...(막연한 낙관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한 번씩 발동하는 이상한 촉을 무시하면 안되었는데...아니나 다를까 102동 앞엔 이사짐 차가 없다.
'미리 짐을 다 뺀건가?'
매수 총각이 잔금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잘생기고 예의바르고 인상좋고 돈도 많은 청년이다.
몇 년전 우리 부동산을 통해서 집을 샀던 선우씨의 친구라고 했다.
인상이 하도 서글서글하고 붙임성도 좋은 선우씨를 보면서 '참 행복해보이고 예쁜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이 청년도 선우씨 못지 않았다.
"어서와요."
"저, 소장님. 집 파시는 분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이사짐을 다음주 화요일까지 뺀다고 하던데요."
헉...무슨 이런 날벼락 같은 소릴 해맑게 하는가!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나한테 전화를 하지 그랬어요? 아니..뭐 이런 경우가. 나한테 전화를 해야지..."
너무 당황스러워 말도 제대로 안나오려 한다.
"그러시라고 했는데요? 저도 당장 들어올게 아니라서요"
"아니. 오늘이 잔금일인데...짐을 몇 일 후에 뺀다는게 말이 안되는데. 아, 진짜 뭐 이런 사람이 다있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중개사에게 말도 안하고, 잔금 당일날 순진한 매수인에게 직접 전활해서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하다니. 잔금이 오고가면 매도인은 다른 약정이 없는 한, 집 안에 숟가락 하나도 남겨 놓으면 안된다는 것이 거래에 있어 지켜져야 할 중요한 약속인데, 이 매도인 도데체 뭐하자는 거지?!!
약속시간 다 되어 나타난 매도인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듯하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끓는 화를 삭이며 약정서 하나를 작성했다.
'매도인은 화요일까지 완전퇴거를 하지 않을 시 손해배상을 하여야 하며, 매수인이 본 호실에 남아있는 모든 물품을 폐기처리하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 손해배상금액은 계약금에 준하는 금액으로 한다.' 라는 요지의 내용으로.
"사장님. 오늘 매수인이 이사짐을 싣고 왔으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잔금일에 짐을 안빼다뇨? 매수인이 사람이 좋았길레 망정이지 진짜 큰 일날 뻔 했어요. 다른 매수인 같았음 잔금이고 뭐고 때려치고 계약금 배액배상 하라고 난리났을 거에요. 하아... "
잔금이 끝난 후 약정서에 도장을 찍는 매도인을 향해 최대한 분을 삭이며 다그쳤다.
나의 다그침에 매도는 그제서야 미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미안합니다. 제가 사실은 몇 일전에 큰 일을 겪어서 정신이 너무 없었어요. 저 나쁜 사람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짐 정리하겠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쌍둥이 아들이라고 했다.
그 중 큰 아이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몸이 약해서 자주 아팠다고 한다.
최근들어 부부는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며칠 전, 큰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머리가 아프단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토하는 것이 심상치가 않아서 아내는 남편에게 얼른 병원으로 가자고 재촉했지만 아내가 미웠던 남편은 모른척 나가버렸다.
급하게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지만 의식을 잃은 아이는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별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은 남편을 욕했다.
"지 새끼가 아파서 죽어가는 데, 모른 척 하는게 인간이야?"
"죽은 애랑 엄마만 불쌍하지. 술 마시러 다닐 정신은 있나보네. 어제 동네 횟집에서 혼자 술먹고 있더라니깐!"
"이혼하면서 양육비 주기 싫어서 남은 애를 지가 키운다고 했대. 완전 개자식이지! 여자가 양육비도 필요없다고 애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던데?"
세상의 모든 비난이 남자를 향해 날아들고 있다는걸 그는 알까.
세상에서 가장 냉혈한이며 몹쓸인간이라는 딱지가 그에게 붙었다.
"장례식에서 울지도 않더래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실장님이 매도인에 관한 소문을 전해준다.
" ...... "
들려오는 매도인의 소문에 예전에 봤던 영화 '디 아더스' 와 '트라이앵글'이 생각이 난다.
장르는 공포영화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슬픈영화라고 생각했었던 영화.
너무 슬퍼서 공포스러운, 공포스럽도록 슬픈 영화.
영화가 끝났을 때 잠깐 멍을 때릴 수 밖에 없었던 영화들이었다.
디 아더스에서 주인공의 아이들은 햇빛 알러지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저택은 늘 검은 커텐으로 온 집을 가려야 했으며 한 뼘의 햇살도 그녀의 집으로 들어와선 안 되었다.
전쟁에 불려간 남편. 낮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아이들.
혼자서 이 모든걸 감당했어야 할 그녀는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증을 견뎌야했다.
어느 밤. 침대에서 싸우는 두 아이를 그녀는 베게로 눌러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을 때, 그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트라이앵글에서 주인공은 반복되는 타임루프 속에서, 아들을 죽인 과거의 자신을 단죄하고 아들을 구해내고 싶어했다.
그녀는 과거의 그녀를 죽였다. 하지만 아들은 살릴 수 없었다.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만 있을 뿐.
두 영화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한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사랑하는 자식을 죽게 만들고, 그것에 대한 후회를 영원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형벌. 영원한 후회.
남편을 잃은 사람은 과부, 아내를 잃은 사람은 홀아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고아라고 부르는데 자식을 잃은 사람을 부르는 말은 없다.
자식을 잃는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이라 세계의 어느 언어에서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일컫는 말은 없다고 한다.
하물며 '나 때문에!'라는 죄책감까지 얹어야 한다면 아마 그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것이다.
어쩌면 그도 디아더스의 주인공처럼 죽어도 살아있다 느끼고 살아있어도 죽어있다 느끼고 있진 않을까.
어쩌면 그도 타임루프에 갇힌 트라이앵글의 주인공처럼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며 영원한 후회를 반복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그 때. 아이를 데리고 빨리 병원을 갔었더라면...'
나는 매도인에 대해 비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