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면서 마지막 동아줄
구명정을 볼 때마다 과연 배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저걸 내려서 퇴선 하여 옮겨 탈 시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등 항해사가 되면 Chart RM.(해도실)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게 되는 것이 또 구명정인데 그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 들어가는 항구마다 항만 검사관들이 가장 먼저 시비를 걸고 들어오는 것이 구명정이었다.
특히, 호주의 경우 PSC(Port State Control) 검사관들이 구명정에 갖는 관심이 다른 곳보다도 유별난데, 들어가는 고리, 구명장비 하나하나를 죄다 끄집어내 놓고 뒤질 정도였다. 이런 호주 검사관들의 모습은 2000년 초, 뉴캐슬에 입항한 라이베리아 선적의 선박을 검사하던 검사관이 검사 중이던 구명정 와이어가 풀리며 바다로 실족 추락사한 이후의 모습이라고 대리점이 귀띔해주었다.
3대 메이저 PSC로 불리는 AMSA(Australian Maritime Safety Authority : 호주), PARIS MOU(유럽), USCG(United States Coast Guard : 미국) 공히 라이프 보트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경우, 바로 출항정지(PSC code 30 : 모든 선원들과 해운회사를 공포에 떨게 하는 조치)에 상응하는 벌칙을 받게 된다. 예전 영국 리버풀에 입항했을 때는 리버풀을 관할하는 지역 해운항만청장이 직접 검사관으로 승선하여 본선에 장비되어 있던 구명정을 실제 모의진수(Simulated launching) 시킨 적도 있는데 당시 본선에 장비된 라이프보트의 타입이 Free Fall Type - 자유낙하식 - 이어서 상당히 고생스러웠던 기억으로 남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검사 시의 번거로움을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이유는 그저 검사용이 아니라 유사시, 본선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번거로움에도 꼬박꼬박 갖게 되는 소화, 퇴선 훈련을 거르지 않고 유사시에 대비하는 것은 다 그런 이유에 기인한다.
결국 배 타는 이들에게 구명정은 마지막 희망이자 애물단지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