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서 쓰레기나 주워먹는 새로 알고 있던 녀석들에 대한 새로운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갈매기는 부두 주변이나 연안에 머물면서 어선들에게 달라붙어 물고기를 얻어먹는 너절한 새로 알고있다. 인천이나 강화도 주변의 새우깡 킬러들이나 '6시 내 고향'의 어촌편에 여지없이 등장하는 녀석들을 보면 그런 편견이 확실하게 '하나의 사실'로 굳어진다.
리차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 리빙스턴이 그토록 나는 것을 열망하며 빠져나오고 싶었던 것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너절한 갈매기의 숙명으로 그려지고 있었으니.
하지만, 많은 갈매기들이 그렇게 살고 있더라도 결코 모든 갈매기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바다를 항해하다가 늘은 아니더라도 자주 만나게되던 그 녀석들을 만나면서.
바닷가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배에 더불어 대륙을 넘나드는 갈매기들이 있었다. 우리가 고기를 낚아 올리는 어선도 아니고 녀석들에게 호의적으로 음식을 베풀어주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전무했지만, 녀석들은 낮에는 배 주변에서 뛰어오르는 날치를 사냥하고 밤에는 배의 마스트에서 쉬어가며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이 넘는 기간을 함께 달려가곤 했다.
사진에 찍힌 이 녀석도 그런 녀석들 중 하나였는데 - 색깔을 보면 알겠지만 이제 갓 새끼에서 벗어난 갈매기였다 - 털갈이까지 완벽하게 마친 나이 지긋하고 경험많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에서 영국의 리버풀까지 우리와 함께 날았던 녀석이다.
나는 더 이상 갈매기를 너절한 새로 부르지 않는다. 물론 오늘도 수많은 갈매기들은 새우깡에 열광하고 어선의 꽁무니만 쫓는 녀석들도 있지만 열심히 자기의 힘으로 날개짓하며 대륙을 넘나들었던 녀석들의 존재는 수많은 녀석들의 허물을 대신하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