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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스 Jan 30. 2023

눈 쌓인 아침

에세이

까악 까악 까마귀들 울음소리가 좋아졌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는 때는 어딘가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하더니 올 겨울에는, 늦은 가을이면 날아오는 저 새떼가 기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너희는 어디까지 날아갔다 왔니? 지구 반바퀴? 아님 반의 반 바퀴? 문득 너희가 나보다 낫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니다. 나은 걸 너머 너희는 정말 경이롭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느 순간 저 울음소리가 싫지 않아진 이유를 알 것 같다. 또 한 가지. 새들은 사람들을 구별할 줄 안다고 한다. 오히려 새들을 구분할 줄 모르는 건 사람 쪽이다. 누가 더 똑똑한 거야? 그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아침마다 정원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달라졌다. 나를 알아보겠지? 나뭇가지 사이에서 나를 보고 있겠지? 저 전깃줄 위에 있는 애는 내가 나오니까 갑자기 우네. 나 나왔다고 지들끼리 얘기하나 봐. 대박.  

함박눈이 끝없이 내릴 것 같더니 이제 좀 그치려나보다. 엄마가 사놓은 소녀조각상과 엄마가 심어놓은 키 작은 낑깡 나무, 엄마가 달아놓은 크리스마스 오너먼트가 오늘따라 다 예쁘다. 엄마는 휴무날에도 분주하게 자신의 로망을 실현하느라 바쁘다. 벌거벗은 소녀 조각상과 유럽풍의 토분이 줄줄이 놓인 멋진 정원이다. 검은 돌담과 주황색 낑깡은 제주풍이라 해야 되나. 이 모든 것들이 엄마의 작품이다. 예술가가 따로 있으랴.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너무 가볍다. 나는 적어도 좋은 예술과 좋은 삶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기록될 만큼 위대한 예술품을 남기고도 나쁜 삶을 살았던 이들이 있다. 우리 가족은 엄마의 작품을 감상하는 유일한 관람자들이다.    


며칠 동안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경탄을 하며 읽었다. 단편 모음집이었는데, 사실 다시 읽어야 할 만큼 글이 조밀하면서도 내용이 풍부하다. 그중에서도 벽에 난 자국을 보며 끝없이 상상을 펼쳐나가는 글이 제일 인상 깊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글.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 쌓인 아침에 까악까악하는 소리를 들으니 나는 저것으로 시작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로망을 실현해 가는 엄마처럼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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