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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스 May 27. 2023

파리 구청 벽화 속 여성들에 대한 소고

파리 15구 구청의 결혼식장에 들어서면, 19세기 말의 화가였던 페르디낭 앙베르(Ferdinand Humbert, 1842-1934)와 피에르 라가르드(Pierre Lagarde, 1853-1910)의 벽화들을 볼 수 있다. 방 전체를 수놓고 있는 이 벽화들은 당대 파리 교외에서의 노동자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앙베르의 작품인 <저녁녘 La Fin de la Journée>(1885)에서는 나룻배를 타고 귀가하는 일군의 남성들과 그들을 배웅 나온 여성들의 모습이 그려졌다(도).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아기를 들어 올려 반가움을 전하는 여인의 몸짓은 벽화 전체를 마치 낙원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게 한다. 1884년 콩쿠르의 심사위원들은 “작은 배에 오른 남성들로 대표되고, 원경으로 사라지는 강변 위의 여인들과 아이들로 지탱이 되는 이 거대한 작품보다 더 성공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시골풍의 장면, 평온한 풍경, 인물들의 소박함은 깊은 매력을 지니는 모종의 효과를 창출해내고 있다.”고 격찬했다.

이 벽화 외에도 결혼의 방의 출입문 왼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라가르드의 <가족 La Famille>(1886)에서는 농가에서의 평온한 일상이 그려졌다(도). 당대 비평가들은 앙베르와 라가르드의 벽화에서 그 당시 고전적이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의 벽화로 정평이 나있던 피에르 퓌비 드 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 1824-1898)의 영향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토마스 그림(Thomas Grimm)은 앙베르의 벽화에 대해 퓌비의 영향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경향을 “퓌비주의(Puvisme)”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으며, 알베르 볼프(Albert Wolff, 1835-1891)는 퓌비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사이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평가들은 앙베르가 퓌비의 제자였으며, 라가르드는 앙베르의 제자였던 사실에서도 기인한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한 점은 퓌비나 밀레를 연상시키는 평온하고 전원적인 분위기가 벽화에 등장하는 노동자 가족을 이상적인 이미지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리 15구 구청의 결혼의 방을 장식하고 있는 이 벽화들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여성들의 존재이다. 라가르드의 <가족>에서 서 있는 두 인물의 시선은 앉아 있는 여인에게 집중됨으로써 여인은 벽화 속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임이 감지된다. 여인은 안고 있는 아기에게 무언가를 떠먹이고 있는 동시에 다리를 물레 위에 올리고 있는데도, 편안해 보이는 자세와 제스처로 인해 전체적인 분위기에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라가르드의 벽화가 지극히 이상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사실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의 작품 <수프 La Soupe>와 비교해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도). 도미에는 노동자 계급의 부부가 수프를 먹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여성은 수프를 떠먹는 동안에도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쪽 다리를 굽혀 아기의 머리를 바치고 있고, 반대쪽 팔꿈치로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다. 몸을 사선으로 만든 채 수프를 떠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여성은 라가르드의 벽화에 재현된 여인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리 구청의 벽화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은 실제 현실을 도외시한 연출된 장면인 것이다. 벽화는 이상화를 통해 마치 조용한 설교를 하듯이 노동자 계급에게 바람직한 가족상을 제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가족 안에서 여성의 중심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가족>에서 등장하는 물레나 벤치에 비스듬히 놓여있는 방추는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이 가내에서 해왔던 수공업을 암시한다(도). 프랑스에서 여성들의 가내 수공업은 19세기 후반 크게 확산되었으며, 도시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겪고 있던 파리의 경우, 1896년에 이미 1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가내 노동에 참여하였고, 이는 전 여성 노동자의 18%를 차지하는 수치였다. 특히 가내 수공업은 주로 집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육아나 가사노동과 병행이 가능했고, 오랜 숙련 기간 없이도 쉽게 할 수 있는 수작업이었기 때문에 기혼 여성이든, 미혼 여성이든, 본래 직업이 있든, 없든 많은 여성들이 선호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가내 수공업이 여성들에게 선호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손쉬운 노동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에게 가내 수공업은 남는 시간에 하는 소일거리 정도가 아닌 가족 전체의 생존을 건 최후의 사투와도 다름없는 노역이었다. 이미 공장에 다니고 있는 여성의 경우나 육아를 병행하는 경우, 여성들의 가내 노동은 주로 밤늦게 이루어졌으며, 가사 노동까지 책임져야 하는 대부분의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쉴 틈 없는 노역의 무게를 끝없이 짊어져야 했다. 이렇게 당대 상황을 고려해 보면, 앙베르와 라가르드가 묘사하고 있는 노동자 가족의 모습은 실상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에서 여인이 안고 있는 아이와 물레, 방추 등은 그녀가 육아와 가내노동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도). 이러한 설정은 <저녁녘>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도). 아이와 함께 남편을 맞이하고 있는 여인과, 그녀의 옆에서 여물을 짊어지고 있는 여인은 그녀들이 낮 시간 동안 집 안 혹은 집 근처에서 육아와 가축을 기르는 노동을 동시에 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두 벽화 모두 전원적이고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이들을 재현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이 짊어졌던 고된 일과들이 도덕적 당위성을 지닌 의무로서 변모하고 있다. 즉, 노동자들의 일상을 이상화하는 작업은 관람자로 하여금 실제 현실은 뒤로하고 모범적이고 단란한 모습만을 보도록 유도하는 시각적 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된 노동의 강도와 턱없이 낮은 임금, 부족한 영양 섭취와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 등으로 인한 만성적인 건강상의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집 안 혹은 적어도 집 주변에서 그들의 가정을 지키며 묵묵히 고된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당대 지배 세력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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