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리스 Mar 20. 2024

파리의 근사한 사회주택

최민아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2020)

대학생 때 프랑스어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리옹에서 한 달간 지낸 적이 있다. 학교에 갈 때에는 버스를 타곤 했는데, 기숙사 근처에 있던 버스 정류장에는 매일 아침마다 아랍계 꼬마들이 득실댔었다. 그 꼬마들은 더러운 길바닥 위에 그대로 앉아있거나, 사람들에게 다가가 느끼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사회문제에, 더군다나 남의 나라의 사회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던 무렵이었는데도 나는 종종 그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될지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더랬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펴며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 그 꼬마들은 모두 어떤 집에 살고 있었을까.            


중산층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외계층을 위해 양질의 집을 지어 저렴하게 빌려주는 제도를 설명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공공임대 아파트’나 ‘공공임대 주택’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프랑스에서는 ‘주택’ 앞에 ‘사회’라는 말을 붙여 ‘사회주택’이라 부른다. 이 책 제목의 첫 구절인 ‘우선 집부터’는 2017년 9월에 마크롱 대통령이 내건 슬로건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몫을 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요건이 주거의 안정이라고 보기 때문에 나온 정책일 것이다. 같은 집이기는 하나, 집값과 연관된 부동산 정책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만약 우리나라 정치인 중 누군가가 ‘우선 집부터’라는 슬로건을 내건다면, 우리는 부동산 정책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집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투자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삶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주거지로 볼 것인가에 따라 국가의 정책과 국민의 인식이 달라지는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본인의 경험을 통해 두 나라 중 어느 나라가 더 나은 공동체인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주택의 역사

이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건 프랑스에서는 ‘사회주택’에 대한 논의가 19세기 초부터 있어왔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가 고안했던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모델”인 ‘팔랑스테르(Phalanstère)’를 사회주택 논의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84쪽) 푸리에는 약 4제곱킬로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의 부지에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거주공간을 제안했는데, 소외되는 계층 없이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거주의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푸리에와 같은 사상가들의 제안에 힘입어 몇몇 기업가들이 기금을 모아 노동자들을 위한 거주지를 짓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런 생각을 프랑스 정부가 이어받게 된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이름도 특이한 파리 근교의 ‘아브락사스(Abraxas)’나 ‘아렌 드 피카소(Arènes de Picasso)’와 같은 사회주택들의 경우, 주변 환경과 동화되지 못해 결국에는 그곳 거주민들이 고립되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그렇게 되니 그런 곳들은 범죄나 유혈사태가 빈번히 일어나는 위험한 골목이 되어버렸다. 내가 리옹에서 매일 아침마다 보았던 그 꼬마들과 가족들이 특정 주택에만 모여 산다고 상상해 보라. 그곳에 그들 외에 그 누구도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에 프랑스에서는 사회주택 정책이 단순히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도시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는 접근 방법”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108쪽)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사안이다.


사회주택 정책이 기업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직원이 50명을 넘는 회사들은 의무적으로 사회주택 기금을 ‘악시옹 데 로주망(action des logements)’이라는 기관에 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다음 해에 원래 내야 했던 기금의 2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지불해야 한다. 사회주택을 짓는 사안이 단순히 정부 혼자 이끌어가는 정책이 아닌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함께 동참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준다는 점에서 좋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의 근사한 사회주택들

이 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저자가 자신의 지인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파리의 멋진 사회주택들을 소개해준다는 점에 있다. 그만큼 생생한 현재 파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근래에 지어진 많은 사회주택들은 환경을 고려해 지어졌다거나 건물의 외관이 예술적으로 독특하다는 특징을 지녔다. 서민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사회주택에 예술성을 부여하고, 친환경적 요소들을 도입한다는 발상이었다. 이는 사회주택의 이미지를 한층 좋은 쪽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낙후된 지역에 건축적으로 뛰어난 사회주택들이 지어지면서 그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시켰다는 사례도 매우 좋은 본보기다.

리옹의 한 사회단체가 운영하는 사회주택의 사례도 눈길을 끈다. 병원에서 막 퇴원하여 당장에는 독립적인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사는 사회주택인데, 이곳에는 아주 저렴한 임대료로 학생들이 함께 거주하도록 하면서 일주일에 두어 번 노인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의료시설과 의료진은 따로 있어 학생들은 노인들과의 친목도모만 하면 된다. 이는 노인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는 리옹시에도 도움이 되는 기발한 사회주택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다음의 문단은 저자의 생각을 가장 집약적으로 담고 있어 옮긴다.


“파리는 전 세계의 기업인과 관광객이 모여들어 물가와 집세가 비싼 도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슈퍼마켓 점원이나 학생, 예술가인 프랑스 국민도 함께 이 도시에서 생활한다. 이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정작 이 도시를 생기 있게 만들고 작동하게 하는 사람들을 생활 터전에서 몰아내는 꼴이 된다. 그래서 파리와 프랑스의 도시들은 더 많은 사회주택을 지어 파리 시민들에게 안정적이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만들어 주려 노력하고 있다. 연대하고 지속 가능하며 함께 사는 도시는 사회주택에서 시작한다.”(119쪽)


      


생마르탱 운하(Canal Saint-Martin)     

저자는 주거 난과 관련하여 ‘돈키호테의 아이들(Enfants de Don Quichotte)’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단체를 소개했다. 이들은 노숙자, 집이 없는 이민자 등에게 거처를 마련하고 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의미로, 2006년 12월 파리의 생 마르탱 운하에 빨간색 텐트를 친 후 노숙자들과 함께 일반인들도 집이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퍼포먼스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다른 도시로 확산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캐니(uncanny)한 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