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욕을 잔뜩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난 파리를 다시 가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왜?
왜?
왜?
로맨틱하잖아.
로맨틱하잖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이곳이 더 아름답겠다'라고 줄곧 생각하고 바랐던 나.
그래서 신혼여행 첫 도시로 파리를 선택했다.
사랑의 종결점과 동시에 출발점을 만들어 줄 아주 적합한 도시다.
그렇다.
2년 전 이곳을 처음 왔을 때
파리를 애써 거부하며 곳곳 구경을 아꼈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럴 날이 올 거라고 굳게 믿었으니깐.
사랑.....
남에게 쉽게 드러내고 싶은 단어지만 파리에선 속일 수 없다.
눈물 흘리며 무릎 꿇게 만드는 나만의 역사는 파리에서 드러난다.
마음이 요동치는데 속수무책이다.
그렇다고 그 사랑의 소용돌이에 거부감 따위가 들지도 않는다.
센 강에서는 엄청나게 강력한 사랑의 압박이 거세게 휘돈다.
고요한 녀석 주제에 사람 마음을 흔드는 능력이 제법이다.
그래서 덜컥 파리 녀석을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
파리를 처음 왔을 때 실망감에 차서 투덜투덜 거릴 때도.
파리 명물인 '퐁데자르' 다리 난간 일부가 이놈의 '사랑의 자물쇠' 때문에 무너졌다는데 그저 웃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는 파리 녀석의 속내를 아니깐.
'무너지면 어때. 한 번뿐인 인생인데!!'라며 사랑을 하지 않는 누군가를 자극해 버린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유죄'라는 한국 작가의 말도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다.
이제는 평생을 함께 할 내 남자가 진짜 있으니 자신감이 충만해진다.
파리 골목골목을 걸어 다녀도 마리 앙투아네트 걸음보다 당당한 내 걸음.
이 정도 기세면 "마담(Madame)"이라는 말을 들어도 어색하지는 않겠다.
어디 센 강과 몽마르트르 언덕뿐이랴?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야경은 얼마나 요물단지인가.
파리의 모든 것들이 홀로 다니는 파리 여행객에게 지독한 외로움을 던져 주고 만다.
아무튼 파리는 역사도 각종 문화도 볼 게 많은 도시라고는 하나
누구는 그 망할 놈의 사랑 때문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 중인 눈부신 사랑 때문에
파리를 더 발걸음 하고 싶게 만드나 싶다.
그렇다.
첫 번째 이유도 사랑,
두 번째 이유도 사랑,
세 번째 네 번째 이유도 사랑.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파리는 사랑의 기운이 넘쳐나
나를, 아니 우리를 흔들어 댄다.
그 누구도 사랑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사랑에 목마른, 심지어 사랑을 까맣게 잊어버린 우리에게
파리는 사랑의 선생님이 되어 준다.
"사랑 하나 없이 파리라는 도시를 꿈꾸지 말라"는 따끔한 말을 던지며 말이다.
파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날씨가 어떻든 사랑을 하고 싶어 진다.
구릿빛이 감도는 도시 색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그놈의 사랑 때문이 아닐까.
비에 젖은 거리도, 구석구석 어두운 골목도 모두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 보면
파리는 마성의 도시임엔 틀림없다.
파리는 인정하고 보지 않으면 화나는 도시이고, 실망스러운 도시다.
하지만 그 자체를 받아들이면 파리는 매력 있고 아름답다.
로맨틱이 이유 없이 가슴속에 스며드는 이 도시.
다음 다음번엔 정확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
파리 너, 오늘도 너한테 졌다.
이번 여행에서도 파리를 그렇게 인정해 버리고 다음을 기약한다.
그래 넌 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