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엄마의 누워있는 뒷모습을 보며 그의 칠십일 년을 가만가만 떠올려본다. 내가 모르는 엄마의 유년기, 소녀시절에 엄마가 품었던 어떤 꿈, 나에게 숨겼을 엄마의 상처, 엄마가 염두에 두고 있는 죽음의 모습까지도 나는 아마 다 알지 못한 채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겠지. 하지만 정연이 그러했듯 엄마의 손길과 냄새가 묻어 있는 물건들을 통해서, 엄마를 기억하는 마음을 통해서 엄마가 현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이 공간으로 형상화된다면 아주 복잡한 집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그 집은 사람 마다도 다를 것이지만, 한 인간의 마음으로 만든 하나의 집이라도 시시각각 그 구조와 채광은 변할 것임이 틀림없다. 수많은 방이 생겨났다 사라질 것이고 빛과 어둠, 온기와 냉기가 변화무쌍한 집일 것이다.
슬픔이 결핍된 슬픔을 기쁨이라는 말로 받아들이기엔 거리가 멀고 애초에 바꿔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정연의 마지막 말 “집에 가는 중이었다고, 나의 집이 저기 있다고”에서 왠지 웃고 있을 정연이 그려졌다. 나와 엄마가 살던 집, 정미와 함께 하는 집, '나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앞으로 살아갈 곳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는 왠지 작은 기쁨이 서려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