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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Jan 16. 2024

[문장] 겨울을 지나가다(조해진)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시간이 담긴 그릇을 떠올리며 정연이 내려다보는 잠든 엄마와 저기 손녀의 방 한쪽에 좁게 이부자리를 펴고 살짝 굽은 등을 모로 세워 누워있는 엄마의 몸에 담긴 시간이 같았다. 칠십일 년.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잠시 외면하다가도 결국 읽어버리고 만다.


물론 딸에 의해 기억되는 엄마와의 이야기가 주로 전개되지만 나에게는 부재로써 현존하는 존재에 대한, 알지 못하는 이들의 연결에 대한 의미가 크게 다가온 소설이었다.


아픈 엄마와 함께 살던 정연은 엄마가 죽기 전에 같이 보낸 시간보다 엄마가 부재한 공간에서 혼자 사는 동안 오히려 엄마의 존재를 절감하게 된다. 엄마가 떠난 뒤에도 정연이 집 밖에 나가도록, 사람을 만나도록 마치 유언처럼 남겨놓은 반려견 정미와 함께.

매일 산책을 하고 엄마의 칼국수를 직접 만들어보고, 엄마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엄마는 곁에 없지만 언제나 여기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정연은 그 겨울을 지나며 깨닫는다.


로 전에 읽었던 「축복을 비는 마음」이 집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이 소설도 엄마의 흔적이 담긴 집과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야 했던 다현이가 세상을 떠난 빈 집이 정연과 영준, 각각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

정미의 집을 만들어주기로 했던 영준과 정연이 만나 함께 기억하는 엄마의 칼국수를 같은 공간에서 먹고, 영준의 상처로 남았던 다현이의 집을 정연이 함께 가봄으로써 서로의 공간들을 매개로 둘의 마음이 결합되어 가는 듯 보였다.


그렇게 영준은 정연의 어머니에 대한 안녕을, 정연은 영준이 마음 쓰는 다현이의 안녕을 빌어주게 되는데 급기야 정연은 다현이의 집에서 엄마에게 혼잣말을 한다. “다현이를 만났다면, 엄마가 좀 예뻐해주라.” 이로써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정연의 엄마와 다현이는 안위를 염려하는 사이로 맺어졌다. 실제로 그러하든 아니든, 정연의 마음속에서라도.

아마 정연의 엄마는 언제가처럼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은 참 좋은 거야.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 말이야.”


다현이의 죽음 앞에서 책임감을 느끼던 영준의 모습에서 “애도는 타인의 고통에 책임 있게 반응하는 일이며,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라는「상처퍼즐맞추기」(하미나, 이현정)의 문장이 떠올랐다. 애도의 마음도 배워야 한다고, 우리는 더 보듬어야 한다고 말하던 마음을 떠올렸다. 서로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공간에서 지금은 부재하지 않는 상대방 인연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행위를 통해 그들은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함께 지나간다.


편지를 쓰거나 새해 안부를 전할 때 끝인사로 자주 쓰는 문장있다. "닿을 수 없는 세상 사람들과 더 연대하시길", "가까운 이들의 안녕과 먼 곳에 있는 이들의 안녕을 함께 빌어주는" 계절이거나 삶이거나 날들이거나, 하는 식이다. 내 주변의 안녕만 바라는 것이 부끄러워진 어느 날부터 알지 못하는 존재들의 안녕을 빌고 마음으로나마 연대의 뜻을 보내는 마음의 습관 때문이. 누군가들의 그런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서 닿을 수 없는 어느 먼 곳의 인간과 비인간 존재까지도 안녕하길 바라며 이 겨울을 지나 보낸다.




남기고 싶은 문장들


p.13

시간이 담긴 그릇…….

잠든 엄마를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의 몸은 시간이 담긴 그릇 같다고.

그렇다면 엄마의 몸에는 칠십일 년이 담긴 셈이다. 그 세월은 엄마를 아이에서 소녀로, 두 딸의 엄마로, 다시 할머니이자 암 환자로 변모하게 했다. 엄마에게 울고 웃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얼굴에 주름을 남겼으며 눈빛에 근심과 외로움을 새기기도 했다. 엄마가 머잖아 숨을 멎는다면 엄마의 칠십일 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문득 나는 그것이 궁금해졌다. 확실한 건 그 누구도 엄마의 매 순간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는 것일 터였다.

엄마의 누워있는 뒷모습을 보며 그의 칠십일 년을 가만가만 떠올려본다. 내가 모르는 엄마의 유년기, 소녀시절에 엄마가 품었던 어떤 꿈, 나에게 숨겼을 엄마의 상처, 엄마가 염두에 두고 있는 죽음의 모습까지도 나는 아마 다 알지 못한 채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겠지. 하지만 정연이 그러했듯 엄마의 손길과 냄새가 묻어 있는 물건들을 통해서, 엄마를 기억하는 마음을 통해서 엄마가 현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p.19

한 사람의 부재로 쌓여가는 마음이 집이 된다면 그 집의 내부는 너무도 많은 방과 복잡한 복도와 수많은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수납공간마다 물건들이 가득하고 물건들 사이 거울은 폐허의 땅을 형상화한 것 같은 먼지로 얼룩진 곳, 암담하도록 캄캄한 곳과 폭력적일 만큼 환한 곳이 섞여 있고 창밖의 풍경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런 집…….

인간의 마음이 공간으로 형상화된다면 아주 복잡한 집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그 집은 사람 마다도 다를 것이지만, 한 인간의 마음으로 만든 하나의  집이라도 시시각각 그 구조와 채광은 변할 것임이 틀림없다. 수많은 방이 생겨났다 사라질 것이고 빛과 어둠, 온기와 냉기가 변화무쌍한 집일 것이다.


p.132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으며…….

슬픔이 결핍된 슬픔을 기쁨이라는 말로 받아들이기엔 거리가 멀고 애초에 바꿔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정연의 마지막 말 “집에 가는 중이었다고, 나의 집이 저기 있다고”에서 왠지 웃고 있을 정연이 그려졌다. 나와 엄마가 살던 집, 정미와 함께 하는 집, '나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앞으로 살아갈 곳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는 왠지 작은 기쁨이 서려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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