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걱정 인형이 되어줄게

「겁쟁이 빌리」-앤서니 브라운

by 김우진



첫째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내가 더 재밌어하거나 감동받게 되는 일들이 늘어난다. 내가 아이였을 때보다 더 많이, 더 즐겁게 그림책을 읽고 있는데 때로는 혼자 목이 메어 읽어주길 중단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읽는 그림책은 긴 호흡의 책 보다 단번에 가슴에 비수를 꽂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딸아이와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빌리'를 읽다가 어릴 적,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로 걱정 꼬리를 달고 사는 내가 꼭 빌리처럼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걱정이 많아서 혼자 끙끙 앓은 적이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일어나지 않을 일, 일어나도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인데 무턱대고 걱정부터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딸아이도 걱정이 많아 우는 목소리로 하소연할 때가 잦은데 나는 올챙이 적을 까맣게 잊고 "그게 울 일이야?"라며 공감은 커녕 타박이나 하는 나쁜 어른이 되었다.


이야기의 정점은 빌리가 걱정 인형에게 걱정을 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생긴 걱정 인형이 걱정되어 그 걱정 인형의 걱정 인형까지 만들어주는 데 있다.


처음엔 빌리가 걱정이 많은 아이라서 나 같다고 느꼈었지만 사실 나는 결코 빌리가 아니었다. 걱정 인형을 걱정하는 빌리와 달리 나는 내 위주의 걱정만 하고 살아온 속 좁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나쁜 버릇이 아직도 남아 딸의 걱정보다 내 걱정만 크게 생각하는 엄마가 된 것 같아 부끄럽다.

겁쟁이 빌리 그림책의 한 장면





걱정을 나누면 가벼워지고 때로는 해결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혼자 해결하려 한 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걱정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벽을 쌓기만 했다. 나처럼 걱정 많은 딸아이가 그렇게 자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꽉 막혀왔다.


작은 일도 걱정하는 딸아이를 보며 타박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걱정을 마음껏 나눌 수 있도록 더 귀 기울여주고 다른 사람의 걱정도 헤아릴 수 있도록 대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문한 '걱정 인형 만들기 세트'


딸아이와 함께 걱정 인형을 만들며 엄마에게도, 걱정 인형에게도 걱정을 나누라고 말했다. 때로는 엄마, 아빠의 걱정, 친구들의 걱정도 걱정 인형에게 빌어달라고도 말했다. 이제라도 아이가 걱정을 마음껏 표현하고, 서로의 걱정을 같이 고민하는 순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동안 나의 타박이 용서받을 수 있을까.





걱정 인형을 완성해 베개 밑에 넣고 같이 잠자리에 누웠다. 잠들기 전까지 그 걱정 인형이 잘 있는지를 계속 걱정하며 베개를 들추어 보는 딸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앞으로 아이가 걱정을 말할 때면 따뜻하게 눈을 맞추고 가만히 들어줘야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딸아이의 걱정 인형이 되고 싶다.

딸아이와 만든 걱정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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