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장르의 영화나 소설을 즐겨보지 않아서 이 책이 엄청 화제가 되었을 때도 읽어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었는데 페페연구소의 페북살롱에 참여하게 되면서 드디어 읽게 되었다. SF장르라는 느낌 없이 지금 시대의 이야기로 읽혀서 진작 읽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표지나 콜리가 선망하는 파란 하늘의 이미지처럼 눈부시고 아름다운 이야기였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편치 않았는데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톺아보아야 할 문제ㅡ장애, 영케어러, 열악한 노동환경, 경력보유여성, 동물권, 빈부격차, 인공지능ㅡ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각 문제마다 생각해 볼 이야기가 너무 많아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나 엄두가 안 나서 읽은 뒤 한참이 지나도록 쓰기를 미뤄오다 겨우 일부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인물의 이름으로 챕터가 바뀌는 만큼 인물들이 감정이 잘 묘사되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뚜렷하게 다가왔다. '콜리'도 하나의 '인'물로 재연, 은혜, 보경에게 다가간다. 결말로 가면서는 챕터 구분에 말그림이 등장한다. 아마도 투데이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동물에게 '마리'가 아닌 '명(命)'을 붙이자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처럼 투데이도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서 등장했다는 느낌이 좋아서 그 말그림을 손으로 한 번 쓸어보기도 했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외로워 보였다. 천 개의 파랑이 천 개의 외로움이라고 느껴질 만큼 모든 존재들이 저마다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외로운 줄 모르고 외롭거나, 외로워서 외로움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앞에 콜리가 나타나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마다 하는 질문들을 통해 인물들의 외로움을 드러내게 하고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볼 수 있게 하고, 다시 연결되게 해 준다.
영케어러가 된 연재에게 제일 마음이 많이 갔는데,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 가족들에게 착한 딸이어야 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였다.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p,113)" 연재에게 폭력으로 다가갔을 성장의 이름이 연재를 외롭게 했고 침묵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 연재가 콜리를 만나면서 보경을, 은혜를, 지수를 이해하기도 이해받기도 하는 경험들을 한다.
은혜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가진 장애의 편견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서 남기고 싶은 문장도 제일 길고 많지만 사회적 편견에 대한 이야기에 더해 과학 기술의 발달과 장애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김초엽과 김원영이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보기도 했는데 과학기술의 발달이 과연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지, 그렇다 해도 그것이 과연 바른 방향인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비장애인 입장에서의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과학기술의 발달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를 비장애인과 같게 만들려 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아닐까. 연재가 한 말처럼. "다리는 형체죠.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건 자유로움이에요. (...)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p.338)”
페북살롱 모임을 마치고 나서 생각한 점을 몇 가지 덧붙여 본다.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주로 읽다 보니 소설을 읽어도 내용에 몰입하기보다 분석하면서 읽고 있었다는 것을알게 되었다. 아직 감정의 여운에 흠뻑 젖어있는 분들도, 읽으면서 우셨다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이성적이었던 것이다. 소설은 조금 더 감정에 푹 빠져 읽어야(잘 될지 모르겠지만) 더 깊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독서모임에서 나눴던 이야기 중에 '호흡'의 의미에 대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콜리가 투데이와 호흡을 맞춘다고 하듯이, 우리는 누군가와 호흡하고 있는가 하는. 효율성이나 쓸모를 우선하여 추구하면서 놓치게 되는 것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이야기들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달려야 한다.
"내가 함께하고 싶은 존재와, 그들의 짐을 같이 지고 싶다는 용기를 내며 살아가는 것, 사랑할 용기를 가진 삶이 행복을 추구하는 삶보다 더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이 아닐까"라는 내용의 말씀을 해주신 분이 계셨는데 깊이 공감해서 급하게 받아 적었다.(감사합니다!) 그런 존재들과 호흡을 맞추며 천천히 달리는 삶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깊이 나눌 수 있는 삶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오늘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세상에 존재할 천 개의 외로움(그보다 많겠지만) 중에 십 수개는 오늘 따뜻한 위안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며 보기 드물게 말랑해진 마음으로 모임을 마쳤다.
남기고 싶은 문장
p.78 지상으로 구조된 보경에게 급하게 심폐 소생을 시작했고 0%였던 수치는 10%로 올랐다가 곧 90%로 돌아왔다. 다르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숨이 끊겼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는 걸.
p.84 휴머노이드 다르파 210대를 투입하는 와중에도 소방복을 새것으로 교체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던 것이 소방당국의 의견이었다. 정부의 지원 예산이 휴머노이드 제작에 전부 쏠린 탓에 다른 장비를 교체해 줄 예산이 없다는 말이 소방관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전부 새것으로 교체해 주겠다는 위로를 믿었지만 꼬박 10년 가까이 지나도록 장비 교체 따위는 이뤄지지 않았다.
p.95-96 누구도 은혜에게 가지 말라고 한 적 없었지만 그 무엇도 은혜를 호락호락하게 그곳에 보내주지 않았다. 휠체어를 끌고 경마장에 다녀오는 길이 얼마만큼의 긴 모험이 될지, 어떤 위험을 만나게 될지, 어떤 수모를 감당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므로 은혜는 길을 나서기 전에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필요했다. 은혜에게 집 밖 세상은 맵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주된 공격은 시선이었고, 들어가지 못하는 가게들이 배경으로 지나갔으며, 가방에는 HP 회복을 위한 식량과 물이 구비되어 있었다. ... 아직까지도 휠체어 전용 도로를 따로 만들지 않고 있다는 것에, 만들었다는 곳들이 죄다 도로에 선 하나 그어놓은 수준에 그쳤다는 것에 보경은 늘 분개했다.
p.97 세상이 조금만 더 자신을 남들처럼만 대해준다면 은혜는 사이보그 따위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휠체어를 끌어주는 휴머노이드나 사이보그 다리가 아니라.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너무 많이 바뀌어야 했다.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은혜는 사람들이 전가한 ‘한 사람의 몫’을 아직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반쪽짜리 사람이랄까.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혼자 다니기 위험한 영유아처럼 은혜에게도 반쪽의 몫을 보충해 줄 보호자가 늘 필요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은혜의 판단이 아닌 은혜를 지켜보는 타인의 판단이었다.
p.177 은혜가 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저상버스였지만 여러모로 ‘얹혀 간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p.178 사람들은 그걸 선의라고 생각했다. 은혜가 ‘알아요’라고 차갑게 말하거나 대꾸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의를 무시한 못된 인간이 된다. 그럼 곧장 인상을 찌푸리거나 대놓고 혀를 차는 경우도 있었다. 웃어야 한다. 사람들이 은혜에게 바라는 건 어떤 불굴의 상황도 웃음으로 이겨내는 긍정의 힘이었다.
p.180 은혜가 미안함이나 고마움 따위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사람 사이에 당연하게 일어나는 화음 같은 것.
p.215 “너도 나도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는 게 꼴 보기가 싫다. 우리 엄마는 내가 좋은 대학에 가서 남들에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라고 하는데 나는 왜 굳이 그렇게 멋있게 살아서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있지, 나는 그냥 여행을 다니며 살고 싶어. 카메라 들고 밟지 않은 땅이 없을 만큼 아주 많이.”
p.220-221 보경이 은혜에게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이 사소한 불편이 너를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할 때마다 은혜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너의 정상성은 괜찮은 것이고, 그것이 너를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은혜도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보경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가끔은 자신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확인시키는 차갑고 날카로운 창살 같다는 것을. 휠체어 덕분에 걷지 못하던 이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인도, 계단,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기술의 발달 과정에서 은혜는 철저하게 삭제되었다. 사람들은 지하로 가라앉은 은혜를 모르는 척 외면하더니 어느 순간 휠체어에 앉혀놓고 측은하고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 기술이 너를 구원했다는 듯이 굴었다. 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였다.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p.338 다리는 형체죠.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건 자유로움이에요.
...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p.157 지독히도 인간 중심적인 이 행성에서 동물들은 변화의 희생양일 뿐이었다. 보호받지 못하면 살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자유를 주다니. 복희는 그것 역시도 착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라 여겼다.
p.218 민주는 말들의 관리인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마방에 갇힌 또 다른 말이었다. 사회는 개개인이 촘촘히 연결된 시스템이었고 그 선은 서로의 목을 감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끊어야 할 때 연결된 선을 과감하게 끊어야 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p.251 “물론 빠른 시일 내에는 아니겠지만 아주 먼 미래에요. 짐승이 이 행성을 포기하게 되는 거요. 이곳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물의 유전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예요.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좁은 울타리에 갇혀 착취당하는 삶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유전자가 생존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할지도 모르잖아요.”
복희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기술의 발달과 멸망의 속도가 같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매일 뉴스에 나오는 새로운 기술과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만, 사라져 가고 학대받는 동물들에게 관심을 나눠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262 약자가 굴복할 수 있는 순간은 아무도 그 일을 알지 못했을 때뿐이라고, 모두가 알게 된 이상 더는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꽤 뼈아픈 이야기도 했다.
p.204-205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보경은 콜리가 아닌 주방에 난 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떼어낸다는 게 가능한가요? 그러다 죽어요.”
“응. 이러다 나도 죽겠지, 죽으면 다 그만이지, 하면서 사는 거지.”
(...)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p.286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p.273 배우로서 도전했던 보경과는 다른 당당함도 찾았다. 세상에 생명을 탄생시키고 책임지고 기른다는, 가정을 지키고 있다는,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떠들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보경과 생각이 다른 듯했다. 단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보경은 충무로에서 떠오르던 배우에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배우로 전락했다.
p.274 세상의 편견과 고지식함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절망스러운 운명에서 구해내지 못했을까. 조금만 달랐더라도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운명이었는데. 고작 그 시선이 뭐라고.
p.343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어렵고 복잡했다. 하지만 즐거울 것 같기도 했다.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삶 자체가 연속되는 퀴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