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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씽씽 Oct 27. 2022

시골에서의 이웃집

"개 때문에 한 동네에서 싸움날 일 있냐?"

  신애가 태어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기까지 영식이네는 신애 소꿉친구의 집이자, 부모님들도 서로 친한, 정말 같이 자란 이웃집이었다. 지금은 자식들끼리는 서로 왕래가 없고, 오히려 부모님들끼리 모여 밥도 먹고 놀러 가기도 하는 그런 사이이다. 특히나 신애 아빠랑 아저씨는 서로 자주 모여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친하게 지냈고, 따로 얼굴 붉힐 일도 없었다. 신애가 이 집에 내려오기 전까진 말이다.


  신애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도 인사성 밝고 착한 아이였다. 지금은 이 나이 되도록 남자 친구도 없고, 일은 하는지 어쩐지 맨날 개만 끌고 다니고 뚱뚱해서 언제 결혼이나 하려나 싶은, 어르신들에겐 집에 내려와 얹혀사는 '노처녀'로 보일 진 모르지만. 얼마 전까진 동네를 걸어 다니면 "아이고, 신애 서울에서 내려왔나?"하며 살갑게 안부를 물어주시는 할머니들과 동네 어른들에겐 어렸을 땐 공부 잘하고 착한 아이, 커서는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애였다. 지금은 "오늘도 개 델꼬 나가니?"라는 말을 더 많이 듣지만.


  어쨌든 신애가 이 집에 다시 내려오면서, 아니, '신애가 개를 끌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웃집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시골에는 개를 풀어놓고 살거나, 개를 풀어놓고 밭에 데려가 일을 하거나, 개를 풀어놓고 산책을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사실 신애만 해도, 일루를 그렇게 잃기 전까진 일루도, 오루도 풀어놓고 자주 산책을 했다. 개를 풀어놓고 다닌다는 것에 크게 경각심도 없고 뭣도 몰랐던 신애는, 소중한 일루를 잃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개한테도 위험하고, 남한테도 위험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하여튼 신애는 그 후로 꼭 산책줄을 하고 산책을 하지만, 아직도 개를 풀어놓는 게 일상인 사람들이 시골엔 많이 있다. 논이 펼쳐진 시골길을 주인이 걸어가고, 그 뒤롤 풀려있는 개 두 마리에서 세 마리가 졸졸 따라가는 모습은 그저 멀리서 보면 한없이 여유롭고 '이게 바로 시골 사는 맛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 주인과 개들을 바로 앞에서 내 개와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발 개 좀 풀어놓지 말아 주세요!"


  신애는 오늘도 영식이네 집 앞으로 찾아가 인상을 팍 쓰며 외쳤다. 이게 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 때문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신애는 바루와 오루 산책을 끝내고 개들을 집 안으로 들이려던 참이었다. 영식이네서부터 웰시코기 두 마리가 달려와 바루와 오루 앞에 멈췄다. 그중 암컷이 오루의 뒤꽁무니 냄새를 거칠게 킁킁대며 맡았다. 겁에 질린 오루는 도망가고, 암컷 웰시코기는 바루와 으르렁대며 서로의 목덜미를 물었다. 신애가 당황하며 둘 사이를 떼어놓으니 털 한 움큼이 빠져있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바루와 오루를 개집 안에 들인 다음 여기저기 다친 곳이 없나 살펴보았다. 다행히 상처 난 곳은 없었지만 개를 풀어놓아 이 사단을 만들었다는 것에 화가 났다. 하지만 이웃집이랑 얼굴 붉힐 일을 괜히 만들까 싶어 참았다.


  문제는 그다음이 또 있었다는 거였다. 이번에도 산책을 하고 있는 바루와 오루에게 풀려있는 웰시코기 두 마리가 달려왔다. 오루를 품에 안고, 바루를 이끌고 도망치려는데 으르렁대던 암컷 웰시코기가 바루의 얼굴을 콱하고 물었다. 바루도 질세라 싸움에 응했다. 신애는 너무 놀라 안고 있던 오루를 품에서 놓쳤다. 그리고 길 바로 옆에 있는 논에 꿍하고 넘어졌다. 넘어진 와중에도 손으로는 허우적거리며 싸우고 있는 두 마리의 개를 뜯어말렸다.


  길 저 멀리서 유유자적 걸어오는 영식이네 삼촌이 보였다. 두 마리 웰시코기의 주인. 영식이네 삼촌은 싸움을 건 암컷 웰시코기를 데려가더니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채 훈육을 한답시고 조곤조곤 타일렀다. 논에 빠져 옷이 엉망으로 젖어버린 신애와 눈밑이 이빨에 찍혀 피가 나는 바루는 보이지 않는 건지. 신애는 겁에 질려 바루와 오루를 데리고 뒷걸음질을 치며 제발 데리고 가달라고 말했다. 아직도 목줄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루는 그 일로 처음으로 동물병원을 가야 했다. 신애가 아침저녁으로 소독약과 연고를 발라주었다. 발라줄 때마다 깊게 파인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화가 났다. 영식이네 삼촌은 사과도, 병원비도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신애는 악과 깡만 남은 사람처럼 웰시코기가 풀려있는 것만 보이면 영식이네 집으로 찾아간 것이다.


  그렇다. 그 사건이 있은 뒤에도 영식이네 삼촌은 웰시코기 두 마리를 풀러 놓고 자전거를 타곤 했다. 화가 나서 찾아간 신애에게 삼촌은 험악한 표정으로 '그 노무 개새끼 때문에'라는 말을 했다.


  '개가 차에 치여봐야 정신을 차리지!'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신애는 나쁜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신애는 차라리 그 삼촌이 이 동네에서 떠났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이웃사촌이란 것은 변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찾아가서 말을 해서일까, 영식이네 삼촌은 어느샌가부터 개를 가둬두고 산책할 때도 산책줄을 하기 시작했다. 신애는 동네를 지나다니며 영식이네 삼촌을 계속해서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되도록 정중하게 인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어쩔 수 없는 이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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