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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물아홉, 시골에서 살기로 했다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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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씽씽 Oct 27. 2022

외할머니댁 흰둥이

시골에 사는 개

신애는 매일매일 일루의 무덤에 다녀갔다. 일루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외할머니댁이 있는데, 흰둥이는 외할머니댁 밖에서 키우는 개였다. 플라스틱 파레트 위에 파란색 물탱크를 잘라내어 만든 집, 1M도 안 되게 묶여있는 목줄, 집 주변으로 널려있는 개똥과 밥그릇에 남아있는 먹다 남은 음식 찌끄래기, 흙탕물이 담겨있는 물그릇. 흰둥이는 신애가 그 앞길을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짖어댔다.

어느 날인가부터 눈에 들어온 흰둥이가 마음에 걸려, 신애는 지나가다가도 발길을 돌려 목줄을 길게 늘여주고 물이랑 간식을 챙겨 와 주고는 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경계하며 짖기만 하던 흰둥이가, 신애만 보면은 폴짝폴짝 점프를 하면서 그렇게나 반기는 거다.

신애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루하루 달라지는 흰둥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을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조그마한 노력이, 자신의 손길 한 번이 흰둥이의 세상을 바꾼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그러던 중 흰둥이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중성화도 안 시킨 채로 밖에 묶어놓고 기른 탓에 풀려있는 개 사이에 새끼를 배어 낳은 것이다. 새끼들도 있는 이상, 더 이상 펜스가 없는 채로 키울 수는 없었다. 신애는 엄마와 함께 나무 책상을 이용해 흰둥이 집을 지어주고, 온라인으로 구매한 펜스도 너무 좁지 않게 쳐줬다. 초여름이라, 뜨거운 햇빛을 가려줄 차광막도 사서 쳐주었다. 비록 펜스에 갇혀 지내게 되었지만, 흰둥이의 짧은 목줄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흰둥아, 이제 조금이라도 더 편히 지내!"

꼬물꼬물 거리는 네 마리의 강아지가 너무나 귀여웠다. 강아지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신애는 걱정이 되었다. 외할머니댁에는 개를 신경 쓰고 키울 사람이 없었다. 애초에 흰둥이를 새끼 때 귀엽다고 데려온 큰외삼촌은 이제 이 집에 없었고, 멀리 대전에 살아서 기껏해야 2주에 한 번 정도 올뿐이었다. 더 이상 귀여운 새끼 강아지가 아니게 된 흰둥이는 이 집안에서 골칫덩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흰둥이 밥을 주는 것조차 귀찮아했고, 그나마 고양이를 좋아하는 작은 외삼촌도 흰둥이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흰둥이 한 마리로도 모자라, 새끼 네 마리까지 생겨버렸으니…

"입양 포스터를 만들어야겠어."

신애는 새끼들이 더 크기 전에 입양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디자인 실력을 살려 하루 만에 뚝딱 포스터를 만들었다. 귀여운 새끼 강아지 네 마리가 들어가 있는. 그 포스터를 마을 빵집에, 도서관 옆에 여기저기 붙였다.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이제 2개월이 지난 새끼 강아지들은 꼬리 콥터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신애를 반겼다. 흰둥이의 '둥'자를 따서 일둥, 이둥, 삼둥, 사둥으로 지었다. 바루의 새끼들처럼 말이다. 입양 관련 문자는 잘 오지 않았다. 두 명정도 연락이 왔지만, 입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일둥이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신애의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인 윤혁의 엄마였다. 신애와 엄마는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일둥이를 안아 들고 입양 가는 집으로 향했다. 일둥이에게 주는 작은 인형을 함께 들고서 말이다. 일둥이는 신애의 품 안에서 꼼지락댔다.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제발 잘 살아라.'

집 마당으로 차가 들어서는데, 바깥에 묶여있는 성견이 보였다. 길게 늘어진 줄에 묶여있는 개를 본 순간, 잘못 일둥이의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하지만,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부디 잘 살길 바라며, 일둥이를 아줌마의 손에 넘겨주었다.

남은 새끼 강아지 중 이둥이와 사둥이는 외할머니댁 윗집에 위치한 삼촌집에 가게 되었다. 거의 억지로 떠맡긴 꼴이라, 첫날 목욕하고 집을 지어줄 때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신애는 안 키운다고 할까 봐 직접 목욕도 시켜주고, 집도 지어주었다. 그런데 목욕을 시켜주고 잠깐 집 안에 있을 때 이 녀석들이 이불 위에 똥을 싸버렸다. 신애의 사촌동생들은 질색팔색을 했다. 첫날부터 환대받지 못한 이둥이 사둥이는 그 집을 떠나 떠돌이 개가 될 때까지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고, 신애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게 최선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흰둥이와 삼둥이는 여전히 외할머니댁에 남았다. 신애는 간식을 챙겨 들고 가끔씩 흰둥이 집을 찾아왔다. 펜스 안으로 들어가 널려있는 똥을 밖으로 치우고, 물을 갈아주었다. 겨울이 찾아올 즈음엔 방한비닐로 펜스를 막아주기도 했다. '언제 한 번 산책시켜줘야지.' 생각만 하던 시기에, 더 이상 흰둥이랑 삼둥이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한 작은 외삼촌은 그 두 마리의 개를 돼지농장을 하는 지인에게 줘버렸다. 거의 억지로 떠넘기고 왔다고 했다. 신애는 떠나는 날을 생각해 준비한 간식 봉지와 장난감을 전해주지 못하고 텅 빈 펜스 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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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시골에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