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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Apr 15. 2024

상담기록 6. 엄마

그 찰나에 엄마의 품은 말랑했고, 어색했고, 슬펐다.

오늘 아이가 저를 무섭다고 얘기했어요.

 "엄마는 호랑이 같아요."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내 세상은 시멘트 색, 시멘트와 잘은 모래알이 섞인 표면과 같은 촉감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용기 종기 모여 있는 주택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동네에서 모여 놀던 시절, 그 시절 내가 느낀 촉감은 그 동네의 벽, 바닥, 계단이다. 우리 집은 셋방살이를 했고, 내 기억에 나는 다섯 살, 여섯 살쯤인 것 같다. 앞집엔 나랑 동갑인 계집애가 살았고, 나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과 곧 잘 어울렸다. 그 시절 이웃 간에 수저가 몇 개이며, 저녁은 뭘 해 먹는지 알 정도로 집들은 다닥 붙어있었고, 사생활이라는 게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 부모님이 싸우면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엄마는 아직도 안 왔냐며, 내게 물어보곤 했다. 나는 앞집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버지가 내가 오줌을 이불에 싸서 소금을 얻으러 갔을 때, 내게 소금을 뿌린 일이며, 뒷집 아저씨가 화장실에서 담배 불씨를 끄지 않고  던진 게 화근이 되어 볼일을 보다가 뛰쳐나와 한바탕 소동이 난 일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데, 나는 나의 엄마에 대한 촉감의 기억은 없다. 엄마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을 늘 끌어안고 있었다. 늘 둘 이서 몸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건 남동생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되어서도 한결같았다. 그 사이를 내가 비집고 갈 틈이 없었다. 나도 같이 놀자고 안기면, 그 재미있는 모습도 금방 시들해졌고 셋이 누워있으나 결국 나는 벽을 바라보고 눕곤 했다.

그런 엄마에게 안긴 기억이 있다면,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우고 집에 나갈 때이다. 큰소리가 오고 가며, 아빠의 손지검이 시작되거나, 집안의 물건이 던져지면, 어린 난 늘 양손을 싹싹 빌며, 잘못했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 말을 잘 듣겠고 말했다. 그리고 짐을 싸서 나가는 엄마를 붙들며 가지 말라고 안겼다. 그리고 엄마는 어디 안 간다고 하고선 나를 두고 가버렸다. 그 찰나에 엄마의 품은 말랑했고, 어색했고, 슬펐다.


나는 엄마랑 자는 것을 불편해한다. 지금은 '불편하다'라고 표현하지만, 어린 시절 나는 엄마랑 같이 자는 걸 무서워했다. 잠드는 일을 어려워하고, 잠이 적은 나, 그래서 나는 긴 시간을 뒤척이는데, 어렸을 때 엄마는 그런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셨다. 엄마의 엄한 말이 무서워 나는 뒤척이지도 못하고 '꼼짝 마' 자세를 유지한 채, 엄마가 잠들기를 기다리곤 했다. 불행하게도 지금 내 딸이 그런 나를 닮았다. 그래서 딸아이와 함께 자면, 어릴 적 엄마가 나에게 한 것처럼 나도 딸에게 그렇게 했다.  



 "꿈을 꿨어요."

 "아이의 머리를 빗겨 주는데 갑자기 머리카락이 줄기와 잎사귀로 변해서 아이의 얼굴을 살펴봤더니 울긋불긋한 게 올라오고 있었어요.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을 갔다가 학교를 보내야겠다고 길을 나서는데 호랑이가 주변을 맴돌았어요. 아이를 지키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며 건물로 들어섰는데 아이가 소리쳐 말했어요."

 "엄마, 저기 호랑이예요."

 "제가 아이에게 말했어요. 저건 호랑이가 아니고 곰이야."

 "그리고 걸음을 재촉해서 가는데 길에 죽어 있는 호랑이를 보았고, 아이의 얼굴이 깨끗해져 있는 걸 봤어요."


나의 꿈을 들은 선생님은 내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평소 잎사귀나 나뭇잎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의 머리카락이 잎사귀로 바뀔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그리고 곰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리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꿈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요. 상징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오늘 마침 딸아이가 선생님께 호랑이 같다고 표현했는데, 꿈속의 호랑이는 아이에 비친 모습 또는 선생님이 딸을 대할 때 호랑이처럼 무섭게 대하는 걸 나타낸다고 볼 수 있어요. 아이의 얼굴에 무엇이 난다는 것은 선생님 마이나, 둘 사이의 문제, 갈등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잎사귀를 '생명, 싱그러움, 좋다'라고 표현했다는 건  그 가운데 선생님이 딸과의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고 시작하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요. 재밌게도 선생님은 을 '귀엽다'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호랑이인데, 곰이라고 표현했다는 사실이 선생님이 아이를 대하는 과정이 변하고 있다는 걸 말해요. 호랑이가 죽고, 아이의 얼굴이 깨끗해졌다는 것을 보면..."


나름 꿈의 해석이 신비성이 있다고 느껴졌다. 사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빗겨주는 행위에서 굉장히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유치하게도 아이가 밉거나 내 통제에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빗질을 아주 거칠게 하고,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끼거나 사랑스러운 감정을 느끼면 세심하게 빗질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게 꿈으로 나타나 내가 좋아하는 잎사귀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꿈속에서 걱정하기보다는 신기하게 여기며,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의 해석이 완전히 맞을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나는 아이가 나를 무서워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이가 호랑이 엄마보다 곰 같은 엄마와 함께 이길 원한다. 나의 꿈은 나의 욕망, 나의 앞날을 암시하다고 본다면, 나는 이 꿈이 맘에 든다.

그리고 이 꿈은 마치 예지몽처럼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왔다!



어린 날 엄마에게 나는 물었다.

 "엄마는 나보다 동생을 더 좋아하지?"

 "열 손가락을 깨물어 봐.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는가."


아이를 낳고 말했다.

 "엄마, 아픈 손가락 덜 아픈 손가락이 있어."

 "솔직히 말해봐. 나보다 동생 더 예뻐했지?"

 "지금 와서 하는 말인데 그래 맞아."

괜히 확인 사살했다는 생각과  이제는 직면했으니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인간의 마음이 어찌 똑같이 나눠지겠는가. 나는 이제 성인이고 더 이상 어린 날의 기억에 나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사람과 나의 아이들과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며, 충분히 그 사랑을 느끼고 나누며 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나의 세상은 예쁘다. 나의 세상은 벚꽃이 만발하고 지고 잎이 돋아나며 각양각색의 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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