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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Jun 09. 2024

'작 별 하 지   않 는 다' 한강(고등학생 권장)

2부 밤

1 작별하지 않는다

 바다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중략) 잎사귀도 가지도 남지 않은 채 재의 기둥들처럼 묵묵히 서서 검은 사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선지 벌어지지 않는 입속의 압력을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왜 가지가 없어, 잎도 없어.

 무시무시한 대답이 목구멍 안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죽었잖아.

 그 말을 삼키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퍼덕이는 새가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는 통증을 견뎠다.

 다 죽었잖아.

 부리를 벌리고 발톱을 세운 그 말이 입안에 가득찼다. 꿈틀대는 솜 같은 그걸 뱉지 않은 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새가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감싸고 여민 손수건을 비집고, 친친 감아 매듭지은 실을 풀고, 귀를 맞춰 닫은 알루미늄 통을 열고, 수건으로 감싼 뒤 십자로 묶었던 실을 끊는 것은. 얼어부은 봉분과 그 위로 싸인 눈을 뚫고 날아올라, 잠긴 문 안으로 들어와 철망 속 이 횃대에 않는 것은.

 삐이이 아마가 다시 울었다.여전히 고개를 외튼 채 적은 채 젖은 약콩 같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마에게 물을 줘.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그녀는 주전자에 생수를 부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2 그림자들

*

 뼈들을 본 뒤 부터야

 인선이 말했다.(중략)

 그가을에 유골들이 발굴됐어.

 어디에서?

 나는 물었다.

 제주공항, 하고 대답하며 인선이 목소리를 낮췄다.

 ......활주로 아래에서.


3 바람

 구덩이 가장자리에 있던 한 구가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어.

 다른 유골은 대개 두개골이 아래를 향하고 다리뼈들이 펼쳐진 채 엎드려 있었는데, 그 유골만은 구덩이 벽을 향해  모로 누워서 깊게 무릎을 구부리고 있었어. 잠들기 어려울 때,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쓰일 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 유골만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이유가, 흙에 덮이는 순간 숨이 불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그때 들었어. 그 유골의 발뼈에만 고무신이 제대로 신겨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을 거라고. 고무신도, 전체 골격도 크지 않은 걸 보면 여자거나 십대 중반의 남자인 것 같았어.


 그가 만약 싶대였다면 출생 연도가 엄마와 얼추 비슷할 것 같았어. 두 사람의 그후에 대해 다루면 되겠다는 계획이 섰어. 한 사람은 날마다 수십 차례 비행기들이 이착륙하는 활주로 아래서 흔들리며, 다른 한 사람은 외 딴집에서 솜요 아래 실톰을 깔고 보낸 육십 년에 대해서.


*

젖먹이 아기도?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


무엇을 절멸해?


빨갱이들을.


 그래 사실대로 대답했져. 아이들이 이서나긴 했다곡. 심장이 벌어질 것추룩 뛰멍 말이 더듬더듬 나와신디, 정작 그 사름은 도근하게 한참 가만히 있당 물어봐서, 혹시 갓난아기 울음소리도 들었느냐곡.

 처음 보는 사름인디, 우리 서방이 알민 큰일이 날 건디, 내가 넋이 나간 것추룩 또 대답을 해서. 울음소리는 못 들었지마는 애기를 안고 서 이신 여자들을 봤다곡. 정말로 내가 봐서난. (중략)

 그 사람이 꼼짝 안 허곡 앉아만 이시난, 이제는 더 물을 말이 어신가보다 생각해서. 경 헌디 그 사람이 다시 묻는 말이, 바당갓에 떠밀려온 아기가 있었느냐곡. 그날 아니라 담날이라도, 담달에라도.

 

 내가 더 고라줄 힘이 없었져...... 무사 십멫 년이나 지낭 나헌티 와그네 이러는곡 묻고 싶어나신디 그 말은 입에서 안 떨어졌주.


4 정적

 꿈이란 건 무서운 거야

 소리를 낮춰 나는 말한다.

 아니, 수치스러운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

 이상한 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다.


*

 이번에는 내가 눈을 감는다. 이제 인선도 잃는가, 생각한 순간 조용한 고통이 늦껴졌기 때문이다.


 *거기 있었어, 그 아이는.

(중략) 당숙네에서 내준 옷으로 갈아입힌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 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5 낙하

*

 엄마를 잘 몰랐어.

 몸을 일으켜 캄캄한 책장으로 다가서며 인선이 말한다.


*

 그렇게 헤어지기 전에 두 자매가 함께 대구형무소에 찾아간 게 1954년 5월이야.

 인선의 고요한 목소리가 정적 가운데 울린다.

 엄마가 열아홈살, 이모가 스물세 살 되던 해에.


*

 그곳에 외삼촌은 없었어.


*

 그해 여름 대구에서 검속된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대구형무소에 수용됐어.

 바스락거리는 습자지에 싸인 사진 묶음을 집어들며 인선이 말한다.

 날마다 수백 명씩 트럭에 실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더 수용할 공간이 없게 되니까 재소자들로부터 골라내 총살했어. 그때 죽은 좌익 수 천오백여 명에 제수 사람 백사십여 명이 포함돼 있었어.


 1960년 겨울에 코발트 광산 앞에서 찍은 사진이야. 이때 엄마는 가지 않은 것 같아. 대신 유족회원으로서 회비를 냈기 때문에 이 우편물을 받은 거야.

 사진 가운데 서 있는 안경 쓴 남자는 집게손가락으로 짚으며 인선이 말한다.

 이 사람은 유족회장이야. 이듬해 5월 군사 쿠데타 직후 체포돼서 사형 언도를 받았어. 옆에 총무는 십오 년 형이 나왔어.


*

 그후로 엄마가 모은 자료가 없어. 삼십사 년 동안.

 인선의 말을 나는 입속으로 되풀이한다. 삼십사 년.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6 바다 아래

*

 결국 엄마는 실패했어.

 먼 곳에서 들리는 듯 인선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뼈를 찾지 못했어, 단 한 조각도.


 얼마나 더 깊이 내려가는 걸까, 나는 생각한다. 이 정적이 내 꿈의 바다 아랜가.


 무릎까지 차올랐던 그 바다 아래.

 쓸려간 벌판의 무덤들 아래.


*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


 갈라진 인선의 목소리가 정적을 그으며 건너온다.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중략)


 그 삼 년 동안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 유족회가 정기적으로 그 광산을 방문했다는 걸 나는 몰랐어.

 엄마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그때 엄마 나이가 일흔둘에서 일흔넷, 무릎 관절염이 악화되던 때야.


 그것 때문에 엄마가 아버지를 찾아갔던 거야,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는지 물으려고.


*

여름이었다고 했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이를테면 아버지가 엄마에게 들려줬다는, 주정공장에서 받았던 고문들에 대해서.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고 이북 말을 쓰던 남자가 아버지를 어떻게 다뤘는지. 옷을 벗기고 의자에 거꾸로 매달 때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중략)

 그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엄마는 맥락 없이 자책했어.

 그때 나가 무사 오빠신디 머리가 이상하다고 해실카? 무사 그런 말밖에 못해실카?

 기억나는 건. 그렇게 물을 때면 엄마가 내 손을 놓았던 거야. 너무 세게 잡아 아플 정도였던 악력이 거품처럼 꺼졌어. 누군가가 퓨즈를 끊은 것같이. 듣고 있는 내가 누군지 잊은 것처럼. 찰나라도 사람의 몸이 닿길 원치 않는 듯이.


<3부 다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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