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을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벌써 햇수로 2년 전이다. 11월 어느날, 나는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이제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몇 편의 글도 썼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나에게 물어보았다.
"왜 채식을 하시게 되셨어요?"
나는 짧은 버젼으로, 또 긴 버젼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았다.
속 시원하게 그 내막을 이해한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그냥 나는 채식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번은 다큐멘터리에서 비건인 한 여자에게
"왜 당신은 채식주의자(vegitarian)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저는 비건(vegan)입니다. 한 번도 채식주의자였던 적이 없었죠."
비건은 동물류로 된 음식을 다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는 물론, 어류, 조개, 우유, 치즈, 계란까지
먹지 않았다.
그러니까 돌솥비빔밥을 시켰을 때 깜빡 잊고 계란 빼달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
반숙된 계란을 꼼꼼하게 빼내고 난 다음에 밥을 먹어야만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내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좀 더 좋아졌다. 몸이 가볍다는 것을 느낀다.
동물성 단백질을 먹으면 힘이 없다는 둥,
성욕이 없어진다는 둥 하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안 좋은 점은 너무 사회생활이 불편해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특정 음식점을 가기도 하는데,
회사 앞 두부집에서 회식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배려지만 불편했다. 내가 남에게 불편을 준다는 것이 불편했다.
그리고 비건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비건 요리를 챙겨먹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음식점에 가면 탄수화물인 밥만 잔뜩 먹어야 했다.
한가지 다행인 건,
술에는 동물성 성분이 없어서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는 점,
다행이지 않은 점은,
식물성 안주와 같이 먹으면 술이 좀 더 빨리 취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비건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굳이 고기를 먹을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고기가 들어간 짜장면과 그렇지 않은 짜장면이 물론 미세하게
맛이 다르겠지만, 큰 차이가 없다.
음식에 고기소스가 들어가야만 맛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까다로운 식생활을 유지하며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이 음식을 왜 먹을 수 있는가, 먹어도 되는 걸까?
라고 항상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 전에는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고
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음식 성분표를 보면서
다 피할 순 없더라도 동물성 재료가 안 들어간 음식을 찾는다.
이 음식에는 어떤 재료가 들어가 있을까?
소고기 다시마가 이처럼 포장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겪었을까?
계란을 먹는다는 것은 닭에게 미안한 일이 아닌가?
닭은 자기 자신도 음식으로 바쳐지고, 자신의 알까지 인간의 밥상에
올라가고 있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조개를 먹는 건 동물성 단백질 섭취에 물론 위배가 된다.
그러나 멍개는 성장하면 자신의 뇌를 먹는다고 한다.
뇌가 없으면 고통을 못 느끼기 때문에 먹어도 괜찮은 것 아닐까?
비건을 선택하면,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라,
분해해야 할 대상이 되고,
읽어야 할 소설책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페이스북에 이제
비건라이프는 끝이라는 글을 올렸다.
솔직히 내가 공인도 아니고,
공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섭식의 결심에 대해서
밝힐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비건을 끝냈다고 굳이 밝힌 이유는
다시 육식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비건을 끝내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생명체로서 우리의 섭식생활
나아가서는 지구를 과도하게 지배하고 있는
최종소비자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효리가 육식을 끊는다는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고기를 안 먹는다고 했을 때, 순대나 만두 이런 걸 못 먹는다고 생각했다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봤을 것 같다.
이효리 같은 엄청난 거물이 육식을 한다고 하면,
네티즌들이 달려와 엄청나게 비난하고 악플을 달 것이 뻔하다.
실제로 이하늬는 채식을 한다고 했다가
육식을 한 것이 "들켜"(?) 나중에 건강상의 이유로 육식을
다시 시작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채식을 한다고 선언했으면, 고기를 먹기 시작할 때에도
대중이 알 권리가 있는 걸까?
이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예를 들면, 오늘 나는 A를 사랑하게 되었다.
3달 뒤 나는 A가 싫어지고, B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럴 경우 나는 A가 싫고 B를 좋아한다고 두 당사자가 아닌
자기 자신이 아닌, 제 3자에게 알려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는 간단하다.
댓글에서 종종 확인되 듯, 이 사회에는 채식이나 비건을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사교성이 없을 거야. 성욕도 없을 거야. 점점 말라서 성격이 나빠질 거야.
굳이 채식 혐오라는 말을 쓰고 싶진 않지만,
다른 것을 참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당연히 채식 역시 불편할 것임에 틀림 없고,
그러한 시각은 여기 저기서 느껴진다.
비건을 하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법한 곳에서 그러한 혐오의 단초가 느껴진다.
나는 채식을 혐오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냥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결과적으로 육식을 시작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놓고 비건이라고 함으로써
내가 필요할 때 무엇을 먹을 때 남의 눈치를 보고 싶지는 않다.
먹고 싶으면 먹고,
말고 싶으면 마는 거다.
다행히, 아직은 고기류가 먹고 싶지 않다.
아마도 네 발 달린 동물과 두 발 달린 동물을 먹지 않는 선일 될 것 같지만,
그것도 확실하진 않다.
무엇이 됐든 여러분의 섭식생활에도 건투를 빈다.
수동적으로 먹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식단을 먹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나의 비건 라이프를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