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한달 이상 육류, 생선, 계란, 우유를 먹지 않으면서 생긴 변화
비건 선언한지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났다. 간단하게 후기 남긴다. 가장 중요한 변화부터.
한줄요약: 그냥 좋다. 아주 조금 불편한 점도 있다. 술까지 끊으면 훨씬 더 좋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비건만 해도 아주 좋다. 아주.
내가 구운 비건 만두: 고기가 없어도 맛에는 큰 차이가 없다.
1.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확보된다.
사실 이건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경우는 한 번 사람 만나면 반가워서 참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고기를 먹지 않다 보니, 나와 같이 채식 가능한 식당에 가 줄 수 있을만큼 편하고 좋은 사람만 만나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 불편하면 애초에 만나자는 이야기, 시도도 하지 않게 된다. 덕분에 인간관계가 정리되고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 시간에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몰래 글도 쓰고.. 일석3조다.
2. 숙면
요즘엔 고양이가 나를 깨우는 경우를 빼놓고는 거의 잠을 설치는 일이 없다. 예전에 3-4번씩 잠에서 깼던 것을 생각하면 좀 특이한 변화다. 생각하건대, 아마도 그동안 고기가 잘 소화가 안 되어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3. 변의 변화
육식이 변의 냄새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확실히 차이가 있다.
4. 몸이 가벼워진다.
전반적으로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컨디션이 매번 좋은 건 아니지만, 고기를 먹지 않아서 힘이 없다든가, 그런 건 전혀 없고,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고, 그로 인해 정신도 같이 맑아지는 느낌?
5. 사회생활
1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사람 만나는 게 꺼려진다. 말 수가 줄어들고, 차분해졌다. 그만큼 심심해진 측면도 없지 않다.
6. 걱정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채식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지금은 공부를 조금 해서 채식만 해도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함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초창기에 불안함을 느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채식을 하면 B12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건 어차피 동물에게도 없다. 해조류를 먹으면 되는데 특히 '김'에 B12가 함유되어 있다는 보고가 있다.
7. 식비는 확실히 적게 든다.
물론 비건식은 비싸다. 그러나 비건이 매일 비건 레스토랑을 찾아가서 식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만큼 비건 식당이 일단 많지도 않다. 비건이 되면 일단 대부분 식사를 집에서 해결해야 한다. 좋은 야채를 아무리 사도 고기 사는 것 만큼 들지 않는다. 야채가 비싸다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동물성 식품(고기, 우유, 계란, 생선)을 먹는데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8. 지나친 관심
엄청난 질문세례가 쏟아진다. 나에게 사람들이 질문을 해주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들은 단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같은 대답을 10번 이상 하다 보면 아주 가끔 힘들 때가 있다.
9. 비밍아웃
온라인에서 비밍아웃을 하면, 무조건 악플을 받는다. 내가 비건이 아니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편협했나 싶은데, 이 사람들은 "너네들이 우월해 보이는 척 하는 게 싫어"라는 반응을 보인다. 나는 전혀 그 분들보다 우월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다만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고, 동물성 식품을 줄임으로써 지구에 기여한다고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온갖 논리를 들이대서 욕을 한다. 예를 들어 니가 고기를 안 먹어도 채소장수가 돈을 벌어 고기를 먹는데 어떻게 할 거냐? 는 둥.
10. 설거지가 쉽다.
이건 정말 대단한 장점이다. 때로는 그냥 물로만 설거지 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설거지가 쉬워진다.
아주 짧게 정리하자면, 비건이 되어서 좋다.
이 좋은 걸 왜 안했나 싶다.
일단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주 가끔 회는 가끔 먹고 싶기는 하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사실 술을 먹지 않으면 가끔 "오늘 같은 날 한잔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데, 고기에는 그런 종류의 미련은 없다.
그래서 여러 이야기를 썼지만, 그냥 결론은 "좋다." 그리고 이걸 함으로써 지구에 조금이라도 더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