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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Dec 05. 2019

"비건(vegan)은 사회성이 떨어져"

비건에 대한 소소한 오해들(비건 50일차)

비건 50일차

비건을 시작하게 된지 50여일 지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비건을 시작하기 전 육식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양적으로 엄청나게 많이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고기가 있으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G2를 아시나요?

대학 다닐 때, 우리들의 비밀 사조직이 있었는데, 이름은 G2였다. GG라고도 하는데 '고기'의 약자이다. 대낮에 고기뷔페를 가서 고기를 원없이 먹어치우기도 하고, 모이면 어떤 종류의 고기라도 먹어야 성이 차는 친구들의 모임이었다.

이런 명언도 있었다.

고기엔 두가지 종류가 있다. 맛있는 고기와, 겁나게 맛있는 고기.

10월 20일 경 더 게임 체인져스라는 영화를 보고 나는 비건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좋은 점이 너무 많았지만, 그동안 브런치에서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좋은 점 중 하나는 내 인생을 천천히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남의 가치관에 간섭을 하는 사람이었다. '채식'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꼭 "왜 채식을 하느냐"고 물어봤다. 사실 이렇게 물어볼 경우, 많은 사람들이 "몸에 안 맞아서"라고 대답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많은 비건들이 귀찮은 질문을 피하기 위해서 "몸에 안 맞아서"라고 대답하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경우, 나는 꼭 한마디 덧붙였다.

채식주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뎅....

돌이켜 보면 이 말은 정말 엄청나게 많은 문제점을 담고 있는데,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1) 비건은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을 의미한다. 비건은 계란, 버터, 우유 등 모든 동물성 음식을 거부한다. 즉, 첫 단어의 정의부터가 틀렸다.

2) 사회성은 저 말을 읊고 앉아있는 내가 없었던 것이다: 비건은 사람을 선택해서 만난다. 정확히 자기와 함께 움직여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오히려 채식주의자가 뭔지도 모르면서 채식주의자의 사회성을 운운한 내가 사회성이 없었던 것이다.


비건을 하는 것은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기와 생선을 먹을 때는 먹을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나 많아서 항상 무엇을 먹을 지 고민했다.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하면 어떤 식당을 가야 할지, 그리고 거기서 어떤 메뉴를 시켜야 가성비가 높을 지... 그러나 항상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술이라도 한 잔 들어가게 되면, 용기가 나서 안주를 하나 둘씩 의미없이 시키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먹을 음식이 없으니 감사하며 먹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선택권이 없다. 비건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점으로 가서, 예를 들어 비빔밥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가서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려면? "사실 제가 비건을 하고 있어서요."라고 말한 뒤, "그럼 식당은 당신이 골라주세요. 저는 괜찮아요."라고 상대방이 말해도 내가 상대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의 짐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사람만을 만난다. 그럼으로 좋은 사람에게 더욱 집중하게 된다. 결국 인간관계는 디톡스된다. 그게 과연 "좋은지"는 의문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에게 그것은 "편하다"는 사실이다.


체력에 관한 오해: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

비건과 체력의 관계에 대해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아바타,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에일리언에 빛나는 제임스카메룬 제작의 '더게임체인져스'(2018)에서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내가 크게 더 보태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 역시 하루 한시간 이상은 운동을 꾸준히 하는 다이어터(?)이니 비건과 체력의 관계에 대해서 한두마디는 덧붙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

이거야 말로 비건이 사회성이 없다는 것보다 훨씬 말도 안되는 오해다. 수많은 반론이 '더게임체인져스'에 나와 있지만, 개인적 경험을 한 번 덧붙이고자 한다.


일단 비건을 시작한 이후 먹는 양은 확실히 늘었다. 비건의 거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배가 조금 빨리 고픈 경향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적응하기 위해서는 비상식량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호밀빵, 바나나 같은 거 추천한다. 눈치볼 일이 아니다. 배가 고프면 짜증부터 나고 일상생활이 안 되는 나 같은 사람은 간식이 필수다. 간식을 안 챙겨오는 날에는 약간 병든 닭처럼 골골댄다.


비건을 시작한 이후로 일부러 턱걸이를 계속 하고 있는데, 일단 한달을 기점으로 확실히 기록이 좋아졌다. 운동을 하면 하는 족족 체중이 줄어든다. 헬스한다고 닭가슴살 먹지 말고, 풀이랑 두부를 열심히 먹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이건 몸 만들어 대회 나갈 생각은 전혀 없는 나의 견해이므로 완전히 무시해도 좋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점은 기록이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은 턱걸이를 풀로 당겨서 8개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컨디션이 좋으면 10개도 가능하다. 매일 매일 늘고 있는게 느껴지니,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이건 여기서 더 이상 서술하는 것보다 나중에 애프터 영상 등을 통해서 증명해드리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좋은 건 맞는데 더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여하간 한마디만 하고 싶다.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 말은 고기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왜 고기를 먹지 않죠?

아주 예전, 2006년 히말라야 고산지대 마을 훈자에서(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의 배경인 그 곳)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독일인가, 영국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물었다.

왜 고기를 먹지 않죠?
Why do you not eat meat?
국물은 먹어요. 내가 배고플 때마다 동물이 죽기를 원치 않아요.
I enjoy soup. I don't want animals to die whenever I am hungry.

이런 대화였다. 이 대화는 사실 내 머리 어디엔가에 항상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음 속 어딘가에는 "내가 배고플 때마다 동물이 죽으면 안될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건을 실천하는 지금 저 대화는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주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 때 그 사람의 표정이라든가, 치킨이 버무려진 국물을 뜨면서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던 것.

아무도 공격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는 아주 즐겁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나쁜 점이.. 없는데..?

언급했던, 배가 너무 빨리 고프단 점 빼놓고는 아직까지 좋은 점만 많을 뿐 나쁜 점이 별로 없다. 마음을 바꾸면 좋은 점을 찾아내는 성격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격탓만 하기엔 좋은 점이 너무 많고, 왜 그동안 내가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조금 나 자신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비건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그냥 나 하나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기후변화라든지, 탄소배출, 그리고 공장식 사육이라는 문제 등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겨울왕국 2의 안나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이다.


Do the next right thing.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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