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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Sep 15. 2021

미술관옆 동물원은 아이의
언어 학습장이었다


말이 느린 아이. 

그러다 보니 말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아이. 

언어적인 자극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 

늘 조용히 앉아 레고 조립만 했던 아이. 

어딜 가도 조용히 내 무릎에만 앉아 있었던 아이. 

내가 키워야 했던 아들이었다. 


언어 치료 검사 당시 선생님께 발음이 안 되는 유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언어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결론이 나는 아이들 대부분은 한국어 받침을 소리 내지 않고 다 흘려버린다. 내가 느낀 언어 치료는 흘려버리는 발음에 대해 연습하고 그 발음에 대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다. 거의 모든 발음이 잘 다 되지 않았지만 그중 내가 뽑은 베스트는 바로 [ 동물원 ]이었다. 


[ 동. 물. 원 ] = ㅇ, ㄹ, ㄴ받침이 있다. 

1개 있어도 힘든 받침이 세 개나 있다. 


책을 읽어주며 언어적 자극을 주고자 했던 나는 우선 도서관에서 동물원에 관한 어린이 책을 여러 권 골랐다.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 관한 책을 읽고 토요일 7시에 일어나 8시 집을 나섰다. 동물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내가 살던 집에서 동물원 가는 길은 막히지 않으면 45분 정도 걸리지만 막히기 시작하면 1~2시간도 걸릴 수 있는 도로를 지나야 했다. 토요일 오전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대가 아침 7~9시 사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남편은 아침 일찍 가는 것을 선택했다. 


"동물원 가자!"

"동물원에 오니깐 주차장이 참 넓다."

"동물원에서 케이블카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갈 거야."

"오늘은 동물원에서 어떤 동물들을 보고 싶어?"

"동물원 어떤 동물 친구부터 만나러 가볼까?"


차 안에서 부터 동물원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에게 계속 건넨다. 자연스럽게 아이 입에서 동물원이 나올 수 있도록 정확한 발음을 계속 들려주었다. 동물원은 언어적 자극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학습장이란 생각이 들었다.(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양한 동물들의 이름을 이야기해주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동물 이름을 물어보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따라 할 수 있는 상황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과천 어린이 대공원 주차장이 한산하다. 9시 전에 도착하니 원하는 곳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어느 곳이 더 편할까 살짝 고민도 하면서 말이다. 동물원 정문에서 리프트를 탄다. 과천 동물원에서 리프트를 타면 편한 점은 정문 입구에서 들어오는 사람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나 동물원 끝쪽에서 내리기 때문에 언덕길을 오르지 않고 편하게 내려가면서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동물들부터 관람할 수 있다. (맹수들은 거의 동물원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동물원 개장과 동시에 리프트로 올라가니 내려올 때는 이곳이 과천 동물원이가 싶을 정도로 한산하다. 


"저쪽에 가면 어떤 동물들이 있을까?"

"어, 저쪽에 호랑이가 있데, 호랑이 가족 보러 갈까?"

"아빠 호랑이, 엄마 호랑이, 아기 호랑이. 호랑이 가족들이 모두 있었으면 좋겠다"

"저쪽 봐봐, 우와~~ 저기도.."


낙타, 판다, 재규어, 돌고래, 코요테, 맹수, 공작, 금붕어, 다람쥐, 원숭이.. 이름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받침이 들어가 있는 낱말과 발음이 잘 되지 않는 낱말들을 계속 이야기해주며 아이가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해 갔다. 


동물원 위쪽에서부터 내려오다 보면 동물원 이라기보다는 공원 같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아침 공기의 싱그러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 거대한 공원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아이들이 보고 싶은 것도 편하게 볼 수 있기에 정말 좋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변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에 취했다. 아이와의 즐거운 산책은 학교 입학 전까지 주말마다 계속되었다. 


1학년 첫 상담.

떨리는 마음으로 선생님 앞에 앉았다. 나이가 지긋하신 여자 선생님이셨다. 첫 한 달 동안 아이가 어떻게 학교에서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머니, 우리 00 이는요 친구들이랑 너무 잘 지내요"

선생님의 칭찬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음에 안 좋은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 괜스레 그냥 하는 이야기 같이 들린다. 

"발표도 잘하고, 물어보는 말에 대답도 씩씩하게 해요"


'뭐라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발표를 잘한다고?. 담임 선생님께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언어 치료가 필요한 아이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모든 것이 좀 느리다는 말씀도 드렸다. 선생님이 의아해하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정말요? 어머니,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요" 


어찌어찌 상담을 마치고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말없이 조용히 떨어지는 눈물을 그냥 그대로 두었다. 흐르는 눈물 속에서 지난 2년여의 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잘 지낸다니... 모르셨다니...'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학습적인 부분은 조금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 들었다. 언어적인 부분이 나아졌으니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학습을 시켜야 할 것 같아서다. 학교 들어가기 전 10 안에서 더하기 빼기 정도만 겨우 알고 갔다. 한글도 읽기는 하지만 쓰기는 아직 부족한 수준이었기에 곧 시작될 받아쓰기도 걱정이 되었다. 수학 교과서와 수학익힘책을 꺼내 들었다.  한숨이 나온다. 걱정이다. 


잠깐의 감사를 뒤로 하고 나는 또 한숨을 짓고 있었다. 국어는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학을 포기했던 수포자 엄마인 내가 수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걱정 또 걱정이다. 


이렇게 나의 초등 수학에 대한 관심은 걱정에서 시작되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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