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가 내 대학생활을 돌려준다는 모양인데요?

<앨리스타임> 단편집

by 푸른여우

1.

"언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수포자가 되면 인생 실패한 거래요."

"그래? 내 친구도 수학 잘했어."

"지금 뭐 하는데요?"

"감방에 있지."


2.

언젠가 꿈에서 나는 새벽 편의점에 들른 참이었다.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안주도 없이 파랗고 둥근 테이블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고(기쁠 때는 맥주를 마시고, 슬플 때는 소주를 마신다) 인생이 어쨌다느니, 너무 늦었다느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는 큰 소리로 한탄하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맞은편에 어떤 아저씨가 앉았다. 그 아저씨가 대뜸 이렇게 이야기했다.

"호빵 한번 먹어볼래요?"

그것은 호빵맨이 우는 아이에게 자신의 머리를 떼어주며 건네는 말이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건넨 호빵을 눈앞에 둔 채, 아무리 새벽이라도 그렇지 더운 여름날에 호빵을 건네는 것이 이상하여 먹지 않고 두고 있었다. 나는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호빵을 건네며 저런 얘기를 하는 거 보면 호빵맨을 만든 사람이겠거니 대충 생각하며 비웃듯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좋겠어요. 호빵맨 그려서 인생 성공하셨잖아요. 재능 있으셨던 거죠?"

그러자 그가 말했다.

"호빵맨이 인기를 끈 건 제가 일흔 때였는데요?"

호빵맨의 작가인 야나세 다카시 씨는 쉰 살 때 호빵맨을 시작했고, 당시에 혹평을 받았던 그 캐릭터가 국민 캐릭터가 된 것은 그가 일흔 살이 될 무렵이었다. 나는 그 순간 우왕좌왕해서 아무 얘기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남긴 한 마디를 듣고 잠에서 깼다.

"인생, 아무도 모르는 법입니다."

새벽 여섯 시였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었다.


3.

"언니. 이거 시간을 돌리는 시계인데, 쓰실래요?"

손목시계가 끊어져서 차고 나갈 게 없어 문득 손목을 만지고 있는 나를 보며 앨리스가 얘기했다. 앨리스가 손에 쥐여준 시계는 요즘 사람들은 전혀 쓰지 않을 것 같은 회중시계였고, 말 그대로 동화에서 토끼가 차고 다닐 것만 같은 아주 고풍스러운 시계였다.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시간이 돌아가요.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나서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과거로 날아왔다.

2018년 9월 5일.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으레 대학교 2학년이 그렇듯 아주 연약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나는 날짜를 파악하고 나서는 바로 근처 야구장에서 야구 방망이를 들고나가서, 누구도 보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에 혼자 울음을 터뜨리면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2년 전의 나를 찾기 위해서, 충혈된 눈으로 나를 찾아나간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만약에 너를 골목에서 발견하면 피가 나올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팬 다음에 멱살을 부여잡을 거야.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세상을 증오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너의 눈을 쳐다보면서, 지금 당장이라도 인생을 제대로 살라고 얘기할 것이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완전히 낭비됐어. 네가 지금 잘 살았으면 내가 이렇게 비참하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정신 차리고 살라고, 죽고 싶지 않으면!

하지만 나는 결국, 골목길에서 웅크리고 울고 있는 2년 전의 나를 야구방망이로 한 번 후려친 이후, 그대로 그 사람을 내 품에 묻고 어두운 골목길에 아침이 다가오기까지를 한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내가 미치도록 죽이고 싶은, 2년 전의 나, 1년 전의 나, 세 달 전의 나, 그 모든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지금은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그때의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가엾은 나, 그 가엾음이 미워서 죽이고 싶었던 나, 하지만 내가 가장 증오하면서, 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 그 모든 불완전한 과거의 나는 덜 불완전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나는 내가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사람이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건, 바꿔 얘기하면,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 걸어 나갈 수 있다는 거.


4.

마라톤이 있던 날이었다. 한 줄로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에어건이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일제히 출발하여 결승점에 도달해야 하는 날이다. 나는 덜 풀린 몸으로 흰색 라인 앞에 섰다. 옆 사람은 나보다 다리 근육이 훨씬 두꺼워 아무리 뛰어도 손색없을 듯했다. 그 옆 사람은 적어도 이 중에서 잘 뛴다고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다소 왜소하고 작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하니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서 순위를 세는 것이 더 쉬울 정도로 뒤처져버리고, 그래서 조급해진다. 이대로 결승점까지 계속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불안해진다. 하지만 지금 속도를 계속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제일 오래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주변을 의식하지 말고, 먼저 가는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고 뛴다. 계속 뛴다. 그러면 어느 순간 눈을 떴을 때, 성급하게 먼저 나선 사람들이 길 중간에 서 있다. 아까 보았던 다리 근육이 두꺼운 사람도, 잘 달린다던 사람도, 성급하게 달린 탓인지 중간에 서서 헥헥거리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뛸 이유를 찾지 못하고 멈춰서 있다. 그들 중 몇 명은 자신이 여기까지 뛰어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누군가를 탓하며 화를 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탓할 사람이 없어서 길 한 복판에 누워서 차라리 누가 자기를 밟고 지나가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 와중에 나는 계속 뛰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속도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눈을 감고 뛴다.


5.

"시계 돌려줄게."

"너무 일찍 주시는 거 아니에요? 더 쓰셔도 되는데."

"시간 돌리고 싶을 때마다 더 늙더라고. 젊게 살고 싶어."

그리고 나는 앨리스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었다. 앞으로만 가는 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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