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소설 4.29-4.30
1.
미정은 모서리만 남은 사진을 손에 쥐고 있었다. 사진부에 다니던 친구가 실습이라면서 찍어준 사진이었다. 한 장밖에 없던 사진은 이미 불에 타서 조각만이 남아 있었고, 미정은 그것을 한번 찍는데 얼마큼 돈이 드는지에 대해서는 먼저 떠올리지 못했다. 단지 사진에 찍혀있던 자신의 옛날 모습만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진을 찍은 지는 두 해가 지났다. 두 해 사이 친구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진을 찍으면 사람의 영혼이 담긴다고 웃어른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미정은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이 재로 변하는 것처럼, 자신의 영혼 또한 어딘가로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지금 느끼는 감정이 '홀가분한'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자리가 그을린 사진 조각을 미정은 땅에 묻고 흙으로 덮었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그렇게 묻어두기로 했다.
2.
허난설헌은 죽기 전에 '자신이 쓴 글들을 모두 불태워달라'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미정은 그녀가 수치심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흔적이 후대에도 남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을 것이라고, 그녀는 그렇게 추측했다.
실수로 옮겨 붙은 불티가 사진에 점차 번져가고 있을 때, 그녀가 사진 속 자신과 마주 보며 느낀 감정 또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녀는 자꾸 떠오르던 옛날 일들로 괴로웠고,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자신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일기도 딱히 쓰지 않는 그녀에게 사진 속 자신은 유일하게 그런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었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 그녀는, 사진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다 탈 때까지 불을 끄지 않았다. 불길은 얌전히 사진을 먹어치웠다.
3.
그녀는 그 후로 변함없이 생활을 이어나갔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서 일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일이 있어 늦게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 밤이 되어서야 전차 정거장에 도착했고, 그곳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미정은 자신과 연관 없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조용히 전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옆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미정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거기다 대고 전차요, 하고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이곳은 정거장이고, 자신이 다른 것을 기다릴 리는 없었다. 그래서 애써 무시하고 다시 정면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다시금 물었다.
"무엇을 기다린답니까?"
바닥에 놓여 있던 깡통이 자신 쪽으로 굴러왔다. 미정은 살짝 다리를 들어 피했으나, 마치 강아지처럼 깡통은 자신을 졸졸 쫓아왔다. 그녀가 그것을 밟자, 와그작, 하고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4.
붐비는 전차 안에서 그녀는 여러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었다. 좁고 답답한 와중에 전차는 계속 앞으로 향했다. 그녀는 문득, 외로운 사람들은 이 시간에 전차를 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전차가 동대문역에서 멈추고, 앞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내리면서 자리가 하나 비었다. 그녀는 가만히 있었고, 이내 그 자리를 누군가가 다시금 메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차는 다음 역에 도착했다. 미정은 가까스로 차에서 내렸다. 심야의 종로 거리는 사뭇 조용했다. 그녀는 자신의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매일 걷는 길인데도,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님에도, 몇 걸음을 걷고 나니 그녀는 이상하게 피곤했다. 그렇게 발걸음은 점차 느려졌고, 이윽고 미정이 자리에 멈춰 섰다.
그제야 미정은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홀가분한'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진을 태우면서 소중한 무언가가 같이 타버린 것도 같았다.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단지 우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