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만 가득했던 3월이 지나고, 4월은 글을 쓰면서 부끄러움만 가득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좀 더 자기반성을 할 여력이 생겼다는 뜻이겠지만, 어찌 됐든 얄팍한 지식으로 무언가를 계속 써 내려가는 일에 죄책감을 계속 느끼고 있어요.
제목은 두 글자로 되어 있고, 언어유희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저 생각나실 때, 심심하실 때, 이 두 글자로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글을 썼나 한 번씩 봐주신다면, 그렇게 귀하의 심심함이 해소된다면 그냥 그걸로 좋겠습니다.
중반부터 다소 장편인 <수첩소설>을 대신 쓰기 시작한 까닭에, 이번 달 분량은 조금 적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푸른여우의 두 글자 산문, 2022년 4월입니다.
거짓
한참 비관주의(라고 쓰고 중2병이라 읽는 것)에 빠졌을 때는, '삶이 거짓말 같으니 매일이 만우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근데 다 포기하고 싶은 마지막 순간에 거짓말처럼 좋은 일을 툭, 던져주는 것도 또한 삶의 모양새인 듯. 오다 주웠다는 식으로 투박하게 던져진 행운을 손 위에 올리며,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 좋았다고, 그렇게 꼭 쥐어 보였다.
창작
나는 고립된 섬 같았다, 라는 식으로 감정을 써보다가, 맨 마지막에는 '이렇게도 써볼 수 있겠네'로 끝내기. 문학의 부작용인지, 나는 일터의 풍경을 보며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까지 느껴버리곤 했다. 그러나 불필요한 감정과 비유들은 소설 속에만 넣어놓기로. 그런 건 소설 쓸 때나 도움이 되지, 사는 데에는 영 도움이 안 된다... 이렇게도 써볼 수 있겠네.
꺼내
"오늘 있잖아. 잔디밭에 모여서 사진 찍는 대학생들을 봤어. '나도 저랬는데', 작게 혼잣말이 나왔어. 다행이야. '나도 저럴 걸'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나에게는, 아직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곳곳에 많이 남아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물론 후회는 많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애원하지 않으려고. 잘 살았다, 나도."
마음
'같은 하늘 아래 있잖아.'
그 흔할 수 있는 말이 당신의 입에서 나왔을 때, 나는 그 어떤 참신한 문장을 들었을 때보다도 마음이 움직여버렸다.
반사
"말 많은 사람 너무 싫어."
왜냐하면 내가 좀 말이 많아서.
내가 싫어하는 남의 모습은, 사실상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남을 헐뜯는 일은 자해와도 같다. 그걸 알고 있는데 오늘도 '그 사람 있잖아' 하고 주머니에서 호박씨를 꺼내버렸네.아차 싶다.
의지
"나한테 의지해."
그 당돌한 말을 들었을 때, 별로 튼튼해 보이지 못하는 당신을 보며 '고맙긴 한데' 속으로 생각해버렸다.
시간이 지났고, 의지박약 한 나는 오늘 아침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채로, 문득 당신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말은 무척이나 소중한 말이었다.
잔상
어떤 사람은 사무치게 그리운 잔상을 남기고 가곤 한다. 그 사람과 만나지 못한 채로 긴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의 잔상은 안개처럼 주위를 떠돌고 있다. 그 안개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분명 연보랏빛일 것이라고 생각한다.한 번만 다시 보고 싶어, 그 말이 안개에 실리기 전에 급히 입을 다물었다.
빈말
Q. 빈말이라도 고마워,라고 할 때 '빈말'의 예시 좀 찾아주세요.
A. 빈말의 '빈'은 '빈 수레가 요란하다' 할 때 쓰는 글자입니다. 빈말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그거 해가지고 성공 못해',
집에서 밥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의 '공무원이나 해',
가난해본 적 없는 사람들의 '굶어 죽고 싶어?' 등이 있습니다.
Q. 그건 빈말이긴 한데, 고맙지도 않은데요.
화장
"차가운 게 낫겄어, 뜨거운 게 낫겄어?"
"그래도 차디찬 데 들어가는 건 좀 싫죠."
"뜨거운 건, 생각해 봤어?"
할머니께서 놀리듯 물으셨다. 벚꽃이 지는 언덕 아래에서 우리는 마지막 이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휠체어 바퀴가 그릉그릉 소리를 냈다. 언덕길은 꽃잎으로 아름답게 자신을 꾸몄다.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어? 아직 멀었슈.
빗낯
창문에 맺힌 빗방울을 보고 엄마는 '빗낱이 보인다'라는 말을 쓰셨다. 나는 처음에는 뭔가가 '빛나고 있다'라고 잘못 알아듣고, 그 뒤에도 한참 '빗낯'이라고 받침을 잘못 알고 있었다. 창문 너머에서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언가 빛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 곧, 그 모습을 볼 수 있겠지. 그런 기대를 품고 있어서 한참 잘못 알아들은 채 있었나 보다.
이탈
"몸은 언제나 현재에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죠."
언젠가 절에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 마음이 과거로 흘러가면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후회로 가득 차고, 미래로 흘러가면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이 불안으로 차곤 한다.
그래서 그때 마음을 현재에 두라며 명상하는 법도 배워왔건만, 꼭 사람은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지식들은 까먹어버리는 모양이다. 뒤늦게 눈을 감고, 주의 산만한 마음의 한 가닥을 붙잡고 천천히 하나, 둘, 셋.......
반박
"세상에 무서운 일들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좋은 일들이 더 많지."
그렇게 바로 반박하던 그이의 머릿속에는, 그 순간 어떤 '좋은 일'이 머물고 있었을까. 그 기억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물어보지 못했다.
오션
"아무리 맑아 보이는 바다여도, 잘 버티면 블루오션이고, 빠져 죽으면 레드오션인 거지."
지움
똑바로 걸어야지,라고 생각하면 도리어 걸음걸이가 흐트러지듯. 좀 더 능숙하게 말해야지, 그렇게 생각할수록 입에 머금은 단어들은 서로 뒤엉켜버렸다. 부자연스럽던 하루가 지나고, 자정이 넘어서야 어렵사리 일기 첫 줄을 썼다.
-그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어.
그러자 '자연스럽게'라는 단어가 가장 부자연스러운 빛깔을 띠었다. 지우개를 들어 수식어를 지우고 나서야, 일기가 좀 더 가벼워졌다.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
암기
"다 외우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세상에는 그런 것도 있다, 그 정도만 기억하시면 돼요."
분명 수업 때 들은 이야기였다. 근데 또 불필요한 감정들까지 다 기억하려고 한 것을 보면, 수업을 어지간히 안 들은 모양이었다.그거 시험에 안 나온다는데, 누가 지적해 주기까지, 중요한 감정들은 여전히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그런 적도 있었다.
배려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자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소재로 소설이나 영화를 만든다. 제작 의도가 위로와 치유라고 직접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선물을 건네 놓고는,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거부하면 하는 말이 '준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보기 드문 성공적인 작품들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본인은 떳떳하신가요?
처방
희망에 차 있으면 언젠가 불행해졌을 때 더 힘들까 봐, 아예 처음부터 당신은 불행해지기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진단을 내리니 그가 '지금 제 불행이 자업자득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라고 되물었다. 어쩌면 값싼 위로나 처방해주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곧 나아질 거다, 라는 말들이 당분간 당신을 웃게 해 줄지는 몰라도 끝내 낫게 해 주지는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 센 질문들 몇 개 처방해드렸고요, 몸 관리가 가장 중요하니 당분간 무리한 자책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물결
어느 뱃사공이 밤늦게 도시를 건너고 있었다. 낮에 한참이나 소란스럽던 도시는, 밤의 물결이 차오른 뒤에는 일말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기에, 그는 듣거나 말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가 조심스레 노를 저었다. 조각배가 밤을 가르며 도시 안쪽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가장 캄캄한 지점에 이르렀을 때, 뱃사공은 분명히 어떤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밤이 흘러가는 소리였다. 그것은 당연하게도멈춰 있지않았다.
큐트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맞은편에는 내 키만한 곰인형이 앉아 있었다. 어쩐지 새로 산 테디베어 냄새가 난다 했다.편의점 간이 테이블 위에는 소주 한 병과 두유 한 병이 놓여 있었다. 나는 조금 취해 있었고, 그렇기에 혼잣말의 데시벨을 조절할 수 없었다. 귀여운 거 티 내나, 그 말이 분명히 저 귀에도 가닿았을 것이다.
"실은 비밀인데, 제가 사실 좀 귀여워요. 왜냐하면......"
곰인형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했다.
"자기에 대해서 잘 알수록 사람은 더 귀여워지거든요. 당신은 귀엽나요?"
두유병 뚜껑이 상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물론 저는 곰이지만요, 테디베어가 덧붙였다.
상냥
페르시안 고양이는 상냥한 고양이로 남고 싶었다. 그녀는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며칠째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주인에게도, 심지어 자기 딸들에게도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잠에 들었다. 가장 상냥한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텔레비전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니, 비겁해요. 꿈속에서 누군가 이야기했다. 그 말에 눈이 떠졌다. 품속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껴안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요 근래 가장 편안한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