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약국 건물과 고시텔 건물 사이에서 불그스름한 달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두 건물은 모두 삼층 짜리 건물이었고, 달은 일층 높이에 낮게 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두세 걸음만 지나쳐도 그것은 금세 건물 뒤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늘 밤 붉은색 달이 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 달은 어떤 목적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특별한 목적성을 가지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완전히 둥글지도 않고, 일부는 그림자에 가려진 채로, 지평선과 거의 맞닿은 어느 지점에서 붉은빛의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오늘 달 봤어? 나는 누구에게든 오늘 하늘에 뜬 달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재빨리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그러나 렌즈에 비친 달은 가로등 빛에 섞여서 지상 어딘가에 떠있는 하나의 조명처럼 둔갑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달이 잘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지나고, 고시텔 건물 앞까지 나아갔으나, 멀리서 보았을 때 조그마했던 건물들은 내가 가까이 가자 웅장하게 커져 밤하늘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방으로 빛을 뿜어내는 노란색 달과 다르게, 붉은색 달은 그저 덩그러니 하늘에 놓여 있었기에 찾는 것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높은 건물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넓은 들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이 얼마나 지상에 머무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나 나는 그것이 조만간 사라질 것만 같아 불안했다. 발걸음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고시텔 건물을 지나 낮은 한옥들이 모여 있는 태이동 골목을 지나다녔으나 이번에는 무질서하게 엉킨 검은색 전선줄과 거대한 타워크레인이 다시금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붉은 달을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련을 헤쳐나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어슴푸레한 가로등 빛을 가로지르며 달을 찾는 모험이 계속되었다. 등에 맨 가방이 어깨를 조이고 있었고, 더운 여름밤의 열기로 인해 옷은 땀으로 젖고 있었다.
[모험가잖아요, 언니는.]
점심에는 샐러드를 먹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앨리스는 앨리스는 문득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던졌을 말에 나는 포크를 멈추고 나 자신이 얼마나 보수적인 사람인지에 대해 줄곧 늘어놓았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천으로 옮겨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앨리스로부터 모험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용맹하게 창과 방패를 들고나가는 게임 캐릭터들을 몇 떠올렸지만 그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일치시키지는 못했다. 그런 자조가 있었던 것이다. 자조,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고 보니 어쩌다가 모험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까. 창가 자리에 앉아서 묵묵히 푸른 이파리를 먹고 있는 자신이 초식동물처럼 느껴졌던 것만 기억에 강하게 남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남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창가 너머의 아스팔트 도로를 검은색 SUV가 유유히 지나가다가 우연히 내 앞에서 멈추었다.
내 자리는 유리창을 마주 보고 앉는 구조였고, 그렇기 때문에 내 시선은 자연스레 자동차 조수석에 타 있는 사람에게 닿을 수밖에 없었다. 조수석에는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여자가 한 손에 담배를 든 채 연기를 차창 밖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검은색 생머리에 어딘지 모르게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는 내 또래나 후배 정도로 보일 정도로 젊었고, 운전석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는 검은색 SUV를 몰고 있는 정체불명의 운전자에 대해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상을 하던 와중에 조수석의 인물이 똑같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는 약 몇 초 동안 그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다가 알 수 없는 감정에 슬쩍 시선을 피하고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여자는 마찬가지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약간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은 후 창 밖에 툭, 담배꽁초를 버렸다. 운전자는 조수석에 앉은 여자가 담배를 다 피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이내 다시금 액셀을 밟아 유유히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다음부터 내 안의 무언가가 분실된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담배꽁초와 함께 무언가 중요한 것이 하수구로 빨려 들어간 것만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대로 눈을 부릅뜨고 있을 걸. 그때 그 사람이 마지막에 입꼬리를 올리고 웃은 것에는 과연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일지. 어쨌든 나는 그 사람과의 눈싸움에서 졌다는 것이 유난히도 분했던 모양인지 해야 할 일도 잊어버리고 하루를 불쾌한 감정에 휩싸인 채로 보냈다. 그러나 그 불쾌감으로부터 겨우 헤어 나온 저녁에는 자신이 분실해버린 것에 대해서 여전히 되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밤 열 시가 지나 편의점과 몇몇 자동차들만이 불빛을 뿜어 내는 고요한 밤길에 혼자 무언가를 찾으러 뛰어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을 지도, 단지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윽고 태이동을 지나 한울 아파트 101동과 102동 사이에서 붉은 달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수풀에 가려진 채로, 여전히 사진을 찍기에는 애매한 곳에 약간 타원형으로 떠 있었다. 내가 아파트 단지로 점차 다가가자 이번에도 높다란 아파트들이 달을 가렸다. 그 순간 나는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서 원래 어느 위치에 달이 떠있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다시금 골목으로 들어섰다. 몇 번 둘러본 적이 있었던 태이동의 한옥 골목과 달리 이곳은 중간중간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낯선 골목이었다. 풀벌레가 고요한 정적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어둠 속에서 울고 있었다. 집에서 더위를 피하지 못한 동네 주민이 나시 차림으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골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이십 대 청년을 어떻게 보았을까. 내가 만약 그런 사람을 보았다면 젊은 빈집털이범으로라도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줄곧 하늘을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달은 내가 더 낮은 곳으로 향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돌바닥에 회색 고양이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따뜻하게 달궈진 돌바닥은 고양이가 휴식을 취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모양이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앞에 수그려 앉은 후, 많이 덥죠? 하고 괜히 말이나 한번 붙여보았다. 회색 고양이는 처음에는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내더니 이내 내가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인지 그냥 시선을 돌렸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한 제스처였다. 나는 달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저 몸을 납작하게 눕히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마치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일단 납작해져 보라는 듯이.
거리의 빌라들은 대문이 무방비하게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입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다가올 테면 다가오라는 듯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가급적이면 그것들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순간적으로 그 어둠에 잡아먹혀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앨리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모험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앨리스는 헤어지고 나서 나에게 카톡으로 엠비티아이에 대해 물었다. 나는 나의 저주받은 엠비티아이에 대해서 앨리스와 당분간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내 엠비티아이는 놀랍게도 내 마음 한편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거의 그대로 제시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밤이 찾아오면서 낯설어진 광양리의 어느 마을을 돌아다니며, 손전등도 없이 자신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은연중에 찾고 있었다. 한없이 납작해지면서. 이 앞에 어떤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는 가장 낮은 곳으로 들어서 있었다. 시작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었고, 이미 나는 시작을 해버렸다.
수박 껍질이 어느 쟁반 위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가로등마저 없는 재개발 구역에서 나는 어지럽게 페인트칠된 건물의 벽에 쓰인 글귀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허락없이문을열고들어올경우엄중히처벌, 쥐새끼처럼숨지말고나와라, 포장마차진짜포장진짜포장포장. 정갈한 주문들이 흰색 문, 갈색 문, 다시금 흰색 문에 휘갈겨 있었다. 어떤 문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 매달린 문 건너편에 진짜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건물의 벽은 자줏빛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고, 옆에는 깨진 대야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쓸모 없어진 싱크대나 냉장고가 더러운 얼룩을 묻힌 채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아무도 없는 깜깜한 사무실에서 미처 끄지 않은 컴퓨터 모니터가 푸른빛을 뿜고 있었다. 고요하기 기묘하기 그지없는 이 동네에서 어느 곳에선가 전동 휠체어를 탄 노인이 이쪽 골목에서 저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노인의 전동 보행기 또한 건물 벽과 마찬가지로 자줏빛이었다. 불길한 엔진 소리가 점차 새로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노인이 지나온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지도 상에도 없는 좁은 길의 입구가 있었고, 그 위에는 마치 무언가를 표시하듯 유부 색 천막이 옅은 바람에 유유히 흩날리고 있었다. 애초에시도하면되는데. 자신의 엠비티아이에 대해 앨리스가 보내준 카톡이 머릿속에 다시금 떠올랐다.
애초에시도하면되는데. 하늘에서 사라진 것들, 또 지상에서 사라진 것들을 찾는 데에 있어서 이 길의 끝으로 나아가도 그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확신은 없었다.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길의 입구를 들여다보았다. 시골에서나 나는 매운 풀 냄새가 인간의 출입을 경계하는 것만 같았다. 이유를만들어그만두려하다니. 이 동네 어딘가에서, 우리와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거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나는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일어나지않을수도있는.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의 끝에 혹시나 그런 것이 있다면...... 나는 두려워졌다. 그러나, 나는 달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모험가의 기질이 있었다. 쇠파이프로 막힌 그곳은 무릎을 낮게 굽히지 않으면 지나가기 힘든 길이었고, 나는 누군가에게 예의를 표하듯이 최대한 몸을 낮추어 그곳으로 들어섰다. 양 옆은 공사장처럼 철문으로 계속 막혀 있고,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은 무척이나 좁았다.
어디선가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부엉이가 아닐 수도 있었으나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철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바스락대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여기는 도대체 어딜까. 뭐하는 세계일까. 내가 검은색 SUV 조수석의 인물에게 무언가를 빼앗긴 뒤로(혹은 무언가를 빼앗겼다고 착각한 뒤로) 세상은 이렇게나 기괴해져 버렸다. 밤하늘에는 몇 개의 별이 보였지만 가로등의 오렌지색 빛이 이곳저곳으로 퍼져 시선을 흐렸다. 나는 그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한없이 납작해진 채로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예의를 표하고 있는 거라면, 내가 지금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고 있는 거라면, 나는 처음에는 검은색 SUV의 운전자 얼굴을 그려보고, 그다음에는 마음속으로 붉은 달의 모습을 몇 번이고 그려보려고 하면서, 그래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걸어 나갔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나에게서 뺏어간 것들을 돌려달라고. 만약에 그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럼 지금 지독히도 나를 괴롭히고 있는 찝찝한 감각이라도 벗어나게 해 달라고. 내가 더 이상의 핑계를 대지 않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둬야지 뭐, 그런 태평한 생각으로 어떤 불길 속에 뛰어들 수 있게 해 달라고. 달을 보게 해 달라고. 달을 보게 해 달라고. 달을 보게 해 달라고. 자동차 운전자와 조수석의 여자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긁적이고, 트렁크 뒤편으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쾅.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갑작스러운 충격에 섬광이 일었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잠깐 동안, 나는 분명히 하늘에 떠있는 붉은색 달을 보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었고, 낮게 뜬 달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다시금 어디선가 철문이 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정신을 팔고 있던 사이 뒤에 맨 가방이 어디 부딪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아까 철문 너머에서 바스락대던 누군가가 나를 골리려는 목적으로 낸 소리일까. 그것에 대해 정체를 알지 못하겠는 와중 길은 갑작스럽게 끝났다. 폐목재, 포대자루, 다 쓴 목장갑 등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마지막으로 그 너머에 놓인 흰색 가로등이 길의 끝을 알려주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에 올라서자 끼익, 하고 어디선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도 보지 않고 곧바로 길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곳은 넓게 트인 아스팔트 길이었고 정차된 차들은 많이 있었으나 5차선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그곳은 광양리 도매시장 입구였다. 하늘 한편에는 새로 짓는 아파트들이 줄을 이었고, 그 옆에 누가 잘못 박아 넣기라도 한 듯 흰색 별이 두 개 애매한 위치에 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긴장한 탓인지 땀범벅이 된 채로, 휴대폰을 켜서 자기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낮에 왔던 광양리역은 밤이 되니 가로등 불빛만을 반짝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달의 개수를 통해 자신들이 있는 세계가 원래 세계가 맞는지를 확인했던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나도 하늘에 떠있는 달 개수를 확인해보려 했으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세계가 변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다. 무언가가 변했어, 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밤거리처럼 고요해졌다. 나는 납작한 고양이라도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언가가 변했어. 무엇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변한 것 같아. 그러면 고양이는 하암, 괜한 소리 말고 잠이나 자라구, 하품을 하면서 다시금 돌바닥에 누워버릴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