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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Jul 20. 2022

어둠으로 구워 낸 '찬란한' 소설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추천 지수는 ★★★★★ (10/10점 : 저기요. 여기 타임 리와인더 하나만 주세요. 책 읽기 전으로 돌아가서 또 읽게요.)


   ★ 상처를 빨리 잊는 데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만큼 새로운 사랑도 무성의하게 시작하기가 쉽답니다.

    (p.54,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에 대한 설명)


   ★ 내가 조금만 더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아니,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은 사람이었다면......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내가 최소한 나 자신이기만 했다면. 그랬다면 지금 같은 절망이나 무력감은 없었을까. (p.170)


   ★ 추억이라니, 환상이라니, 그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는 줄곧 현재였으며 현실이었다. (p.218)


   열여섯 살인 '나'는 어느 날 의붓여동생 '무희'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분노에 찬 계모와 무관심한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던 '나'는 단골 빵집 '위저드 베이커리'로 몸을 피하게 되는데요. 비밀스러운 상품들을 판매하는 마법사 점장과 낮에만 인간으로 변하는 랑새, '나'는 당분간 빵집에서 그들의 일을 돕게 됩니다. 상대방의 실수를 이끌어내는 쿠키, 사랑하는 사람과 반드시 이어지게 해주는 프레첼 등 마법의 제과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나'는 어느덧 자신을 둘러싼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창의력을 뒷받침하는 치밀한 서사 전개

    구병모 작가님의 <위저드 베이커리>입니다. 2009년에 처음 발간된 후 올해 새로이 개정판이 출간되었는데요. 표지를 보고 다소 밝은 분위기의 일상 판타지를 생각하셨다면, 페이지를 넘기시면서 적잖이 놀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어떤 청소년 소설보다도 약자인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혹은 실제로 겪고 있을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청소년 문학과 결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청소년 문학의 주요 키워드인 '성장'을 주제로 삼으면서도, 결코 뻔하지 않은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 번쯤 먹어보고 싶게 하는 독창적인 제과 제품들, 이와 더불어  제품의 창의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삽입하여 서사의 질을 높였습니다. 가장 큰 반전은 역시 '나'가 집에 들어간 후 깨닫게 되는 사건의 진실. 탄탄한 플롯과 그 사이 치밀하게 깔려 있는 복선이 작가의 어난 역량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출간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가족에 대한 인식이나 청소년 문제들이 수면 위로 많이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여전히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뛰어난 창의성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스토리 구조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만큼 아동청소년들이 여전히 많은 위험 속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씁쓸한 추측도 가능겠지만요.


   '사회의 어둠'으로 '찬란한' 소설을 빚다

   작가님께서 후기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청소년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좋은 것이나 결 고운 것', 즉 '날 선 날것은 은폐'(p.224)된 이야기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잔인한 범죄는 청소년을 독자로 둔 소설에서는 많이 열화 되거나 생략되어 버리곤 했습니다.

   이 책은 사회의 좋은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청소년을 위한 일이라는 기존의 논지를 정면에서 반박하듯,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이야기의 중심 배경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아이의 심리와 피해자를 대하는 어른들의 이기적인 모습, 겉모습은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금방이라도 분열될 듯한 가부장적인 가족, 아이를 버리는 부모,  불우한 환경으로 고통받는 아들의 모습이 이 책에서는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중반에 주인공이 몽마에 의해 꾸게 되는 꿈은 적나라하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둠'을 청소년 소설에 삽입하는 일은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이는 작품에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어린이들이 사회적 문제를 다룬다는 작가의 핑계로 소모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아이들은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독자들은 작가의 서사를 불쾌하게만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다행히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등장인물인 어린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어둠을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아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독자들은 어두컴컴한 터널에서 걸어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그들의 곁에 어른이 없는 현실적인 상황에 혀를 차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을 보며 자연스레 그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화석과 생물의 중간노선'에서, 보다 쉽고 싱싱하게 쓰였다면

   2009년에 첫 출간되었던 이 책이 2022년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작가님께서도 퇴고를 하신 흔적이 많이 보였습니다. 대표적으로 병신, 식모처럼 이전에는 딱히 문제의식 없이 쓰이던 적나라한 단어들이 순화되거나 삭제되었고, 등장하는 물건들 또한 현대에 맞게  전환되었습니다. 전반적인 문장들은 2009년보다 훨씬 매끄러워졌지만, 작가님께서 후기에 '화석과 생물의 중간노선'(p.224)라고 이야기하신 것처럼 싱싱한 생물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올드한 문장들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분노한 고등학생이 점장에게 "이봐 당신!"(p.75)이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작중 고등학생인 '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큼, 그에 맞게 좀 더 쉬운 문장이 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의 장점인 시니컬한 문체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작품 내 복잡하고 어려운 문장들이 용이하게 작용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캐릭터의 심리나 생각에서 성인 독자들도 이해하기 시간이 걸릴 정도로 어려운 표현들이 많이 쓰였는데,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는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인상이 강해 자칫 몰입도를 떨어뜨릴 우려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운 점들이 있었음에도 <위저드 베이커리>는 출간 후 10년 이상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독자들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고, 또한 사회의 어둠과 아이들에 대한 응원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청소년 문학의 하나의 '고전'으로서 꼭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작품었습니다.


   ★ 상처는 새로 돋는 살의 전제 조건 (p.139)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 후기에도 명시하신 바가 있습니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이 책의 주요 키워드는 선택보다는 '상처'였습니다. 자신의 앞날을 선택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사람은 스스로 상처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을 비롯한 수많은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서 깜깜한 터널을 걷고 있습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그런 아이들에게 잠시 쉴 여건을 만들어주고, 터널의 끝까지 아이들이 걸어갈 수 있도록 응원을 아끼지 않는 소설이었습니다. 정이나 연민이 아닌 바로 그  상냥한 다독임이, 가가 무엇보다 가장 바랐 '찬란한 문장'(p.221)을 가능게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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