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면목 없게도, 열흘에 한 번 꼴로 만들기로 했던 하루하나 문장들은 이제 두 달에 두 개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이어졌어요. 어디가 하루하나야, 라고 물으신다면, 일본어로 하루는 봄이고, 하나는 꽃이니 봄꽃 같은 문장을 썼다고 또 도망칠 수밖에요.
이번 겨울방학은 저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쓸 수 없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시기였어요. 그래도 그 사이에 몇 가지 어렵사리 떠올렸던 이야기들이 있어서 방학을 끝마치는 마음으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바라는 어느 2월의 끝자락입니다.
(6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우리 태어난 지 만 일째 되는 날이잖아
업무에 쓸 일이 있어서 일수계산 사이트에 들어갔었다. 나는 문득 오늘까지 며칠을 살았을지 궁금해져서 계산해 보았다. 9430일. 오래됐을 줄 알았는데, 아직 만 일도 채우지 못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일에 1만 시간 이상 노력을 쏟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이었다. 태어난 지 만 일째 되는 날에는, 나도 사는 데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어 있을까. 그때가 되면 좀 나아질까. 그때가 되면 잡다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회사 컴퓨터에 어슴푸레 비치는 자신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단지 만 일째 되는 날을 캘린더에 표시할 뿐이었다. 이 날이 오면, 비록 사는 데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지 못했더라도, 여전히 잘 버티고 있는 자신을 축하해 주기로 하자, 그렇게 결심했다.
구름튀김은 세 개에 이천 원
테이블 정리를 마저 한 후, 천막 구석에 아무렇게나 연결되어 있는 전등을 껐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려는 손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입구에 달린 지퍼를 주욱 잠그고, 비 얼룩으로 더러워진 천막을 멀찌감치서 바라보았다. 참 오래됐다, 나는 그런 감상을 중얼거린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는 흰 구름들이 한 입 크기로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집게로 집어 기름에 튀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분명 달고 바삭하고, 촉촉할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맛일 것이다.
의미 있는 주말
대부분의 손자들이 그렇듯, 어렸을 때는 주말에 시골집에 가는 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사춘기에 들어가는 이른바 어려운 나이였고, 할머니 앞에서 말했다.
"여기 있는 건 시간낭비예요."
그러자 할머니께서 나를 보며 놀리듯 말씀하셨다.
"민준아, 어떡하지? 살면서 제일 힘든 게 시간을 아껴 쓰는 거던데?"
설산증후군
눈 오는 날에 나는 아이젠도 끼지 않은 채로 어느 산의 정상에 올랐다. 눈안개가 짙게 껴 주위는 새하얬다. 작년 여름에 올랐을 때에는 저 멀리 산등성이에 해가 걸쳐 있는 것이 보였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저 안개 너머에 산이 우뚝 솟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작년에 여기 오르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이 경치를 보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말이나 했을 테니까.
새해 복 많이 받았어요
설날이 다시금 돌아왔고, 나는 시골집에서 할머니와 나란히 바닥에 누웠다. 우리는 함께 천장을 보면서, 떡국이 조심스럽게 끓는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우리 손주도, 한 해 행복한 일만 가득해라."
"할머니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셔야죠."
"할무이는, 쿡쿡 쑤셔 죽겠다. 오래 산다고 뭐 더 좋겠어."
나는 천천히, 할머니의 여린 손을 잡았다. 오래 사는 게 좋은 거야? 신정에 던지셨던 질문에 대해, 나는 아침에 흘러나온 영화에서 얻은 답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모르잖아요, 갑자기 더 좋아질지. 갑자기, 더 좋은 일이 찾아올지."
아직 여기 있어
"너는 삶이 축복이라고 생각해?"
"글쎄. 여기 있으니까 그냥 살지."
마치 '너 떡볶이 좋아해?'라고 물으면, '있으면 먹지.'라고 대답하는 듯한 말투였다.
"근데 이왕 여기 있으니까, 재밌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
"좋은 생각이네. 그래서 재미는 다 봤어?"
"아직."
"그렇구나."
그걸 지켜보던 여우가 생각했다. '네 작년은 어느 때보다 빛나던 한 해였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빛나는 한 해가 될 거야.' 여우는 그런 오글거리는 대사를 떠올리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