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있던 몸이 녹기 시작하는 시기가 가장 다치기 쉬운 시기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어요. 그건 아마도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거겠죠. 저는 지금 노을이 잘 보이는 어느 벤치에 앉아서 마음 다친 일들을 회상해보고 있어요. 이렇게 매번 상처만 받다가 끝나는 거 아닐까. 그렇게 한숨이 나오려던 때에 흘러나오는 노래.
'만약 삶이 한 고개 노래와 같다면, 이제 겨우 한 소절 불러 본 거야.'
심규선님의<그 노래>의 가사예요. 아직 멀었다고 이야기하는 그 노래를 듣고 나서, 저는 비록 아름다운 곡조를 낼수는 없을지 몰라도,목숨이 다할 때까지 남은 소절을 계속 불러보기로 했어요.
근데 저는 이번 달에 쓴 게 이렇게나 많이 모일 줄은 몰랐어요.
(6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꽃은 피고 너는 졌어
"부러우면 지는 거야."
"이기려면?"
"축복해 줘야지. 진심으로."
어느 엄마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로 태어날 거야?"
장난스럽게 물은 질문에,해진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딸이답했다.
"나는 엄마가 행복할 수만 있으면, 다시 안 태어나도 괜찮아."
그 말에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밤새숨죽여가며 쏟아내셨다는 모양이다.
벚꽃엔딩
어느 봄, 나는 당신 차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우리는 드라이브를 가고 있었고, 앞유리 너머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나는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나온 참이었다.
"내년 이맘때쯤엔 뭘 하고 있을까."
나는 막막해진 기분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그것을 들은 당신이 그렇게 얘기했다.
"벚꽃 보고 있겠지."
놀리는 듯한 그 말에, 분하지만 마음이 가벼워졌다.
스타
"할 수 있을까요?"
그가 무대 위에 오르기 직전, 긴장된 표정으로 매니저를 보았다. 매니저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할 수 있을까, 가 아니야. 넌 해내야만 해."
여름의 마음으로
"매주 회의만 들어가면 그렇게 까여. 가기 싫다 진짜."
"그래서 난 맨날 여름의 마음으로 들어가."
"그게 뭔데?"
"여름은 매년 욕먹는데도 뻔뻔하게 돌아온다고. 어디 댓글에서 봤어."
"배짱 좋네, 여름."
어느 연기 자욱한 곳에서
옛날에는 줄넘기 2단 뛰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수행평가 차례가 다가오고, 내가 단 한 번도 넘지 못하자, 체육선생님이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때의 창피함을 아직도 떠올릴 수 있다.
재시험을 앞두고 앉아 있다가, 다른 친구가2단 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친구가 줄넘기 끝부분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저게 요령이었어, 나는 기적처럼 재시험을 통과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말이 무척이나 가슴에 와닿았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나,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이때,나는 다시금 특별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까. 혹시 몰라. 그런 생각에 여태 잘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