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한 번은 상처를 마주해야 한다.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런 일에 상처를 받는다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 그만큼 내게 큰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했다는 뜻이니까. 가장 친한 친구는 내게 그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상처받고 어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의 말이 한 번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와 나는 정말 아무 관계도 아니었고, 그렇게 될 일이었다면, 빨리 결론이 난 게 더 나은 일이다. 사실 정말 내가 잘못된 인연의 시작으로 괴로움을 겪지 않아도 된,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내게 더 ‘좋은’일일수도 있다.
그렇게 애써 잊어보려 1달이 넘는 시간동안 발버둥쳤다. 바쁘게 살면서, 일에 공부에 매달리며. 성장과 발전에만 목을 맸다. 그러다가 가끔 그가 생각이 나면, 그냥 잊어버리자. 지워버리자 수없이 다짐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한 번도 내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처받을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따라 실제로는 상처받은 내 마음을 한 번도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잊으려고만 했다. 문득 내 마음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미움과, 원망과, 후회와, 자책은 나를 끌어내린다. 상처는 내게 외면한다고 해서 잊혀지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적절한 ‘의식’을 부여하라고 요구한다. 이건 그를 떠올리며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저 내가 이 일에 대해 어떤 상처를 받았고, 얼마나 아프고,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정리하는 것이다. 온갖 물건을 쌓아놓은 서랍을 열어 꺼내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 번 꺼내보려고 한다. 내가 왜 상처를 받았는지.
나는 정말 그를 좋아했을까? 멋있는 사람이었다. 배려심 깊고, 차분하고, 멀끔한 겉모습에 무엇보다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책임감 있고 묵직한 모습은 그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가끔씩 알 듯 말 듯 내게 비춰 보이던 그의 호감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믿을 만한 상황들도 시간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쩌면 실제로 그가 나에게 가지고 있던 호감보다, 훨씬 더 많이 그가 나를 좋아하기를 바랐다. 그건 사랑받고 싶고, 여자로서 가치 있게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나의 자존감의 양식이었다. 그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은 나를 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 짜릿한 자극제였다. 아마 사람들이 그래서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단계를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짜릿한 기쁨을 선사하니까.
그런데 내가 바라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는 걸, 아니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그게 아무런 힘도 없이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나를 지탱해주는 근본을 잃은 기분이었다. 내가 믿을 구석이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그토록 사랑과 관심을 받는 여자도 아니었고, 그에게는 다른 사람을 선택할 만큼 꽤나 많은 마음의 공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를 잃은 게 슬픈 걸까. 아니면 나를 어쩌면 사랑해줄 수도 있는, 적어도 사랑한다고 내 기대를 투영할 만큼의 가능성을 잃은 게 슬픈 걸까. 내 모든 기대와 상상과 원함을 투영할 대상이 사라졌다. 나는 상처를 받았다. 나의 가치를 믿게 해주는 존재가 사라졌음에, 더 이상 나의 가치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혼돈 속에서 어지러웠다. 사막 한 가운데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동행자라고 어렴풋이 믿고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마을로 떠나버렸다. 나를 여기에 두고.
더 이상 아무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환경을 지우고 싶었다. 내 삶 속에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밀어냈다. 외로움을 느꼈지만 그를 떠올리게 하는 게 더 아팠기 때문에, 차라리 외로움을 선택했다.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1. 더 이상 나를 좋아해달라고 매달리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좋아 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고,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2.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감을 두게 되었다. 전에는 주위 사람들의 괴로움을 나의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고, 과하게 그들에 대해 고민했으며, 나의 많은 시간을 내주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누구보다 내가 더 소중하고, 내가 더 귀하다. 나를 괴롭게 하면서까지 타인의 요구에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만큼 타인에게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냉소적인 걸까? 아니면 이제야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 걸까?
사실 나는 아직도 아프다. 내 상처는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았다. 아직도 그를 떠올리고, 마음이 욱신거리고, 그와 관련된 건 그 무엇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이런 내 모습이 싫지만, 이것도 ‘나’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지않을까. 상처받을 일이 아닌 일에 상처를 받은 걸까. 사람이 항상 옳고 그름으로 살 수 있을까?
지금은 머리로만 아는 그 진리를, 마음으로 알게 될 때까지. 무릎을 탁 치고 온전히 벗어나게 될 때까지. 그게 설령 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 때까지 웅크리고 앞으로 나아갈거다.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해야 할 공부가 많고, 발전할 길이 무궁무진하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내 성장과 발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내 마음에 온전히 정립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 않아도, 나는 나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고 고귀한 존재라는 걸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해하고 받아들이길 바란다. 사람은 가슴으로 깨달을 때가 있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머리로 안다고 해도 여전히 모르는 것과 같다. 나는 아직은 가슴으로는 잘 모른다. 그래도 이 일은 내게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나 자신으로 서 있어야 한다는 걸.
다른 누가 내 가치를 정할 수 없고,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을 때 내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나는 나고, 타인은 타인이다. 내가 건강하게 서 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과 온전히 교류하며 서로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
나는 지금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이지만, 그래서 계속 일어나려고 노력할 때마다 넘어지고 좌절하고 자책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일어나려고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