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같을 오늘, 불과 같던 어제

by 길잃은 바다거북

혈액형 성격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MBTI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하지만 자기소개에 꼭 필요한 정보일까?

혈액형은 병원에서 필요했지만,
MBTI는 어디에서 필수가 된 적이 있었던가.
그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쓰이는 지표일 뿐.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어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한다.

지표는 나를 설명하는 도구라지만
어느 순간, 나를 변명하는 언어가 되어버린다.

“넌 밝으니까 E 같아. 맞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제단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 외향적인 사람일까?
사실 나는 아닌 쪽에 더 가깝다.
아니, 어쩌면 누구나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다가도
낯선 공간에선 조심스러워진다.
혼자 있어야 비로소 숨 쉴 수 있는 순간도 있고
누군가와 있을 때 오히려 살아 있음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묻고 싶어진다.
정말 나는 네 글자 안에 담길 수 있는 사람인가?

그 지표대로 살아가지 않아도,
그 틀에 맞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인데.

그래서 요즘 나는 자꾸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물처럼 살고 싶다.

이리 담기든 저리 담기든,
그릇에 따라 모양은 달라져도
물은 여전히 물이니까.
형태를 바꾸어도 본질은 잃지 않는 존재.
그런 내가 되고 싶다.

고정된 글자 몇 개로 다 설명되지 않는 어제,
그 복잡하고도 유연한 오늘.

조금 더,
물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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