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태양은 잔인할 만큼 강렬했다.
비는 한동안 오지 않았고, 공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속에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하게 걸었다.
매미 소리는 간헐적으로 귓가를 때렸고, 풀벌레 울음은 그 아래를 조용히 받쳤다.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 모든 감각이 마치 하나의 커다란 몸처럼 나를 감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문득 한 가지 자각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이 소리와 공기, 이 불쾌한 더위까지도—어쩌면 내 바깥에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감각.
더위는 여전했지만 고통이라는 이름은 그 안에서 점차 희미해졌다.
‘덥다’는 문장은 불평이 아니라, 하나의 진술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진술 하나로 나는 살아 있음의 감각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때, 오래된 깨달음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언제부터 내 감정을 의심하게 된 걸까.
더 정확히 말하면, 감정을 감정이라 말하기 전에 스스로 부정하는 버릇이, 언제부터 체화된 걸까.
직감은 늘 조용히 나를 불렀지만, 나는 그것을 ‘확신 없는 것’이라 여기고 외면해 왔다.
설마.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그 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언어였을지 모르지만, 결국 나를 내 중심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 사이, 나는 타인의 감정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의 기분, 남의 눈빛, 남의 말에 내 감정의 무게를 넘겨주는 일에 익숙해졌고,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섬세한 울림들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날, 그 무덥고도 선명한 여름날의 산책 속에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다짐했다.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맨 먼저 스치는 그 감정—
그 단순하고 날것의 신호에 조금 더 솔직해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