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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재 Oct 10. 2018

작별 2

어제 당신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그림자답게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당신은 

그림자답지 않게 우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제 기억보다 키가 자란 

검고 우아한 당신은 

저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마주한 당신의 그림자와 예전 당신에 대한 기억 사이 

어딘가에서 

한동안 갈피를 못잡았습니다 

우리는 서운해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생소했습니다 


실제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당신을 외면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당신도 그것이 두려웠나요

어렴풋이 기억나는군요 

하얗고 연약한 피부 아래

유난히 억센 뼈대

그 이상 당신에 대해 무엇을 더 기억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림자와의 대면은 저를 편안하게 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제는 당신을 만나도 예전처럼 

당신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고 씁니다 

때로 조용히 통곡합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씁니다 

이제 당신은 영원히 그림자의 형상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씁니다 

혹시 당신이 그리워지면 

빛의 반대편에 조용히 웅크리고 

검디검은 당신의 그림자를 기다릴 거라고 

당신에게 쓴 편지를 

당신의 그림자에게 읽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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