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을 기른 지 한 달 남짓 된다.
두어 번 정리를 해 보았지만, 스킬이 미숙한지라 베컴 같은 분위기는 안 나온다. 물론 스킬 탓만 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점 인정한다. 아무튼 노숙자룩은 면해보고자 노력한다.
지인들이 묻는다. 왜 수염을 기르냐고. 나도 정확히 모른다. 콧수염의 일부 부위에 원형탈모를 발견한 것이 부분적인 이유일 수는 있다. 더 늦기 전에, 하는 심정 말이다. 대답을 회피하고자 농담조로 답하기도 한다. 주위의 반응이 워낙 뜨거워서요, 라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적극 혐오층이 적극 지지층보다 월등히 두텁다. 후자의 지지가 눈에 띄지 않게 은근한 반면, 전자는 혐오감의 표현에 있어서도 소극적이지 않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일부 60대 이상의 남성을 제외하면, 혐오층의 구성이 예외 없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취향이 나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애써 무시해 보지만, 그들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는 점이 살짝 아쉽기는 하다.
수염에 관한 질문을 접하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타인의 체모 변화를 민감하게 인지한다는 사실. 특히 유교적 가치체계가 약화되면서, 두개안면 부위의 체모 길이는 심리상태의 변화를 표현하는 암묵적 언어로 받아들여진다. 난데없이 수염과 함께 나타나는 남성은 갑작스레 숏커트를 감행한 여성과 유사한 혐의를 받는다.
나의 수염으로 말하자면, 일신의 변화 등등과는 별반 연관이 없다.
사춘기에 확립한 자신의 스타일을 평생 고수하는 남자들이 있다. 의외로 많다. 이들은 한결같다. 몇 십 년이 지나서 만나도 그들의 스타일과 품성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 아닌 거다. 한결같음을 추구하지도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새로운 모습을 추구한다. 어디론가 가야한다. 변화해야 한다. 한마디로, 일정기간을 살고나면, 지금이라는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수염은 이런 맥락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언젠가는 만족스럽지 못한 ‘지금’으로서 사라질, 그런 현상이다.
겨울까지는 유지해 보고 싶다. 추운 환경에서 하관을 감싸주는 느낌이 궁금하다. 턱수염마저 탈모가 있기 전에 그 느낌을 알아보고 싶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