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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재 Mar 08. 2020

너와 나에게는

천장까지 솟아오른 책장에 빼곡한 책들

그 아우성을 헤치는 손끝을 

낚아채는 어떤 인력(引力)

그렇게 영문도 모르고 너에게 끌렸어


손에 잡히는 촉감이 나쁘지 않았어

표지를 넘겨 차례를 스캔했어

흥미로운 단어들이 시선을 잡았다 놓아주기를 반복했지

무작위로 페이지를 넘겨 이곳저곳 읽었어

그리곤 네가 마음에 들었어

그렇게 너를 곁에 둔거야


밑줄을 그으며 읽었어

밑줄을 그을 문장들이 있다는 건

웬만한 허물은 너그러이 넘어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해

그래서 그냥 그대로 괜찮았어


언젠가

내게 처음으로 페이퍼컷을 준 날이 있었지

순식간에 베고 지나갔어

시간차를 두고 쓰리고 피 흘리는

네가 나에게 그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

네가 나에게 그러리라고는...

그리고는 그런 날이 가끔 있었어

익숙할 만큼 자주는 아니라도

아픔을 잊을 만큼 드물지도 않게


너를 다 읽고 나면 어쩌면

다시는 너를 꺼내보지 않을 수도 있어 

결코 네가 준 페이퍼컷 때문은 아니야

그건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손끝이 너에게서 멈춘 

그런 이유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야


우리 의도하지 않았어

우연이라고 하자

우연히 만나고 우연히 죽고

그런데 모든 것에 수명이 있다는 것은

마치 우연이 아닌 것 같아


상처는

부산물일 뿐

흔적일 뿐

흉터처럼 오래 머무르는

페이퍼컷처럼 가해자를 가려낼 수 없는 


가려낼 수 없는 거야, 너와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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