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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재 Mar 13. 2020

어떤 만남에서

어떤 만남은 헤어짐이 귀찮아 계속된다

그러니까 지속되는 만남은 결국 헤어짐이 귀찮아서다


고백이 귀찮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더 이상 네 생각이 나지 않아, 하는

고백의 뒤를 집요하게 따라 붙을 드라마가


눈물이 귀찮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하는

역사의 무게만큼 미어지는 가슴이


저주가 지겹다

너는 외롭게 혼자 늙어갈거야, 하는

네가 안간힘을 다해 짜낼 독설이


다툼이 귀찮다

아니야, 이 책은 분명히 내가 산 거야, 하는

좀처럼 포기할 수 없는 모든 사소함이


허무함이 귀찮다

법원을 나서며, 씨발 날씨 한 번 드럽게 좋네, 하는

관계의 죽음이 드러낼 삶의 허탈함이


어떤 만남에서 나는 단지 귀찮아서

국그릇에 담겨진 커피 같이 어색하게 식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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