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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지만 얄짤없는

by 이영희



몇 년 전 일본에 다녀왔다.

여러 곳을 다니며 메모장에 악필로 순간순간의 느낌을 적어 놓았던 것을 오늘 아침, 그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짧게 정리해보았다.


인천 공항에서 1시간 20분이면 도착하는 외국.

가깝지만 선뜻 그곳엔 다가서기 힘들고

막상 가보니 같은 아시아권에 있는 국가가 아니라

문화나 생활이 전반적으로 유럽 쪽에 가까우며

우리나라의 몇 배나 되는 큰 나라.


그곳은 정돈되고 조용하며 겉으론 친절하지만

속마음은 냉소적이며 얄짤없음을 피부로 느낀다.

몇 가지 원칙을 잘 지키고 몇 마디 언어구사만 할 수 있다면 사실 그곳에서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인간이 아닌 AI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


특별히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조악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어디를 가나 깔끔하지만 머리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공기. 주택가는 사람들이 살아있기는 하나 생명력은 바짝 졸아든 듯하고, 좋게 이야기한다면 침착한 표정으로 선진국다운 어른스러운 매무새를 하고 있다.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 나라.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국민성인지.


곳곳의 온천, 아소산, 세계 최대 목조건축인

동대사, 그리고 오사카 성 등등 곳곳을 다녔지만

가장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 명소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환란에서 우리 백성이 그들에게 잔인하게 학살되어 코와 귀가 베어져 승리의 전리품으로 일본으로 옮겨져 묻혀있는

귀무덤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묵념을 했다.


학문의 신을 모신 신사에도 들렸지만

남편과 나는 그곳에서 카메라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다시는 그런 슬픈 역사는 없어야 하며

제발 제발, 그때나 지금이나 당파 싸움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야무지게 국력을 더욱 키워야 함을.


다음엔 러시아를 다녀온 소감도 짧게 ....



귀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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