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공원에서, 쇼핑몰에서 갑자기 마이크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다가와 말씀 나눠 달라는 요청을 해 온다.
선거철에는 어느 날 공원에서, 어느 당의 정책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고, 지하철을 타려고 가는 길에서는 지금 시국에 대하여 소신을 말해달라며 예쁘고 멋진 여기자가 마이크를 내 입으로 바짝 갖다 대기도 한다
지난달 말, 쇼핑몰에서 겪은 일이다. 생활용품을 전시해 놓은 그곳에서 각종 그릇과 냄비와 프라이팬 등을 살피고 있는 중에 'ㅇㅇㅇㅇ'케이블 방송이라는 곳에서 취재를 나왔다면서 인터뷰에 응해달라고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한창 피서철이라 한가한 그곳엔 사람들이 뜸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선택되었지 싶다.
나는 먼저 무엇에 대해 질문을 할 것이며 어떤 방향의 대답을 원하냐고 취재하는 담당자에게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 남자분들이 요리에 관심이 많아진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러한 현상에 대한 질문이며 되도록이면 긍정적인 대답을 원한다" 고 질문과 답의 요지를 말해준다.
나름 차분하게 말을 하려 했지만 소형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은 떨림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도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마이크에 대고는 이렇게 말했다.
".... 고학력은 늘어나고 좁은 국토에 취직이란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거기다 퇴직도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어두운 면을 식욕에 초점을 맞추어 먹방이라는 프로가 꾸준히 대세를 이루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이 살만해진 지구촌 곳곳의 선진국 대열의 추세인지는 몰라도 채널만 돌리면 번지르한 입을 쩍쩍 벌리며 '맛있다, 최고다'를 연신 내뱉으며 아구같이 먹어대는, 매번 고정으로 나오는 연예인들도 그러하고 골목 식당을 찾은 동네 주민들이 늘 똑 같은 포즈로 엄지 척을 해주는 표정이 사실 가식적으로 보일 때가 많고 썩 좋아 보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백 주부니, 차 주부니 집밥 열풍으로 세를 몰아가더니 이젠 골목마다 백 씨의 사진이 안 붙은 곳이 없다. 우리 동네만 해도 몇 집 건너 그 사진이다. 홍콩사태가 나기 전에 가족여행으로 그곳에 갔었을 땐, 홍콩의 어느 뒷골목에도 팔짱 끼고 자신 있게 웃고 있는 그분의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왠지 골목만큼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고.
기자는 애매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한다.
" 저기 부정적으로 말고 긍정적인 면으로 말씀을 해 달라" 고.
긍정적인 이야기란 무엇인가. 아마도 원하는 대답은 이런 것이었으리라.
'요리프로가 많아져서 볼거리도 풍성하고 반찬 걱정 없이 매일 보고 듣는 다양한 레시피로 식탁을 차려내며, 주방 그릇이나 조리 도구에 점점 관심이 많아져서 지금도 이런 곳을 찾아와 나도 그릇 쇼핑을 하고 있다는... 그리고 남자들이 주방 일을 하는 것이 보기 좋으며 집안 분위기도 밝아졌다'는....
뭐 그렇고 그런 아주 평범한 멘트였으리라.
그러나 굴하지 않고 나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이긴 해도 남편들이 주방에서 뚝딱거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그 짓거리를 하는 것이 경제 활동에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다.
물론 시대가 맞벌이를 원하고 여성들의 고학력을 활용해 나라에 이바지하며 또 그렇게 계발하며 돈도 함께 벌어야 아이들 교육을 시킬 수 있으니, 남자들도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 두루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요즘이지만, 그래도 각자의 할 일은 뚜렷이 구별 지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남자들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백 주부라는 타이틀의 요리사는 요리사가 직업인 사람이다, 일반인들도 모두 백 주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차승원, 이 연기자가 음식까지 잘하는 남자로 어느 방송에서 계속 눈길을 끌고 있지만, 어쩌다 그런 남자가 있는 것이지 그런 사람들을 잣대삼아 남편들에게 그들과 같아지길 원하며 '멋지다 , 안 멋지다'며 평하는 것은 얇디 얇은 생각이다.
주방에 들어서고 안 들어서고를 가지고 남편들의 인격까지 재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이크와 카메라를 든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했다.
" 요리 잘하는 남자가 아무리 인기라 해도, 내 음식이 크게 맛이 없다해도, 주방을 매일 저녁마다, 주말마다 마구 어질러 놓는 그런 남편은 원치 않는다"고.
담당자는 계속 갸우뚱하더니 내 이름을 묻고 적더니, 그릇 보는 장면을 좀 찍겠다며 양해를 구해 온다. 내가 한 말들이 원했던 방송용으로 적절치 않아 그릇 살피는 주부로만 찍는 척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