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많은 케이블 채널 안에 고대와 현대의 예술가들에 대한 프로가 있었다.
화가들이 보여주는 그 시대만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와 일상을 그림과 함께 해설에 푹 빠져 지냈다.
그 방송덕에 유명 화가들만 겨우 몇몇 알았던 내게, 훌륭한 작품을 남긴 이름이 생소한 화가들의 삶이 흥미로웠다. 서양미술사에 대한 해설과 감상 포인트, 드가, 모네 , 베르메르, 브리겔, 르느와르, 반 다이크, 고갱, 고야와 더불어 르네상스 이전과 이후의 화풍까지 샅샅이 볼 수 있어 영상으로 보는 교과서 같았다.
거기다 그림 경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화면으로 보면서, 그림이 왜 돈으로 환산되어 재산으로 축적되는지, 보통사람인 우리가 왜 고가의 미술품이라면 획일적인 눈이 될 수밖에 없는지, 돈으로 환산된 가치에 휘둘려 그림 감상을 자기 소신대로 할 수 없는 일 등등.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방송이 끝나면, 나는 이젤 앞에 다가 서곤 했다. 연필을 쥐어 스케치했다.
그날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일생과 천재성. 그만이 체득하고 습득한 화풍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준 시간이었기에. 내가 가진 그림책 중에 모나리자를 찾아 마음먹고 모사를 해보기로.
우선 4B연필로만 했다.
피부톤, 명암, 옷 주름. 야릇한 미소까지. 그리고 뒷배경. 역시 역부족이다. 너무 욕심을 낸 나에게 속삭였다.
그만둬라. 다빈치님이 화내신다. 제발, 여기서 그만해라.
하지만 실패를 하더라도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선다 해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성되진 않았지만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래야 보고 또 보며 만약 나중에 다시 모나리자를 그려보고 싶을 때, 어디가 부족했었는지 나름 수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색을 입히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 오묘하고 신비한 색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많고 많은 동호회가 만들어지고 해체되는 요즘이다.
매일 한 편씩 글쓰기라든가, 독서, 스포츠 등등.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면 동기부여도 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매일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스스로를 다그치게 한다.
여기 브론치를 하며 나 자신에게 다짐한 것이 있다.
적어도 일 주일에 두번은 쓰기든 그림이든 하나씩 올리기로. 문장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림이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물론 이곳이 연습장은 아니지만 한계를 인정하면 편해진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사달이 난다. 글쓰기 방법 책, 그림 잘 그리는 법이 범람하는 요즘에, 정말 왕도란 있는 걸까. 누구누구의 글쓰기 강연이 유명하다며 들어보지만, 결국 한 가지로 통합된다.
주제와 소재, 그리고 정돈된 사유. 많이 읽고 보며 듣고, 비슷비슷한 것에서 나만의 갖는 통찰 등등.
어떤 모임이든 교류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음에 또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만 결국 문제는 내 자신이다. 이런저런 조언을 듣는다지만, 들은 대로만 고쳐 쓴다면 초등학생의 수준일 테고, 그렇다고 내 고집대로만 한다면 만남의 이유가 퇴색된다.
연습뿐이다. 꾸준함. 한계란 꼭 뛰어넘는 것만이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정해 놓은 룰만이라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내가 정한 한계다.
오늘도 그림과 함께 게시물 하나를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