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함께, 혼자

by 이영희

새벽 세시가 되어간다.

십 년 넘게 서너 시간만 자면 충분하다. 눈이 떠지면 보통 한 시에서 두시 사이다. 막 잠이 드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나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묻곤 한다.

어제와 다지 않다. 가장 고 착한 시간. 저쪽 큰길의 거침없이 달리는 차 소리와 이 방과 저 방, 거실의 시계 초침 소리만 쁘다. 커피 잔을 옆에 놓고 천천히 곱씹어 새겨할 장을 보거나 렇게 글을 끄적인다. 그러다 이젤 앞에 앉아 가난한 솜씨 스케치 위에 색을 입보기도.


세 식구에서 둘만 남은 공간. 아들이 2년 전에 결혼하고 우리 부부는 각방 생활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더 이른 시절에 잠자리만은 따로 하는 부부도 있겠지만 내겐 늦으나마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방서 혼자 잘 놀게 되었다.


남편과 방을 같이 쓰면 아무리 거리를 두고 누워도 티브이 소리, 먼저 잠든 사람의 코 고는 소리, 사실 나보다 몇 배나 깔끔한 남자지만 술 먹는 사람이다 보니 깊이 잠어 내뱉는, 오장육부에서 올라오는 지나치게 발효된 날숨은 참기 힘들었다.


결혼생활 십 년이 넘어서면서 가장 부러워한 것 주말부부였다.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쳇바퀴 일상이 지루하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느니 어쩌니 하며 주말부부에게 부러움을 표현했을까. 너무 긴 시간 주말부부로, 장시간 해외근무로 지쳐있는 부부도 있겠지만 사십 년 가까이 복되는 일상의 지쳐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의술의 발전으로 십 년을 더 살지 삼십 년을 더 살지 모를 일이.


땅도 너무 오래 한 작물만 심고 캐면 기운을 다 한다 하여 다른 작물로 대체하거나 휴식기를 준다는데 하물며 말도 행동도 크게 변하지 않는 사람과 칠팔십 년을 함께한다는 것이 도 닦는 일보다 몇 배는 힘에 부 것이다. 휴식기도 없 이 삶이 내게는 때때로 갇혀있는 모르모트 쥐에게 통증의 한계를 실험하는 것 같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변하지 않고는 그나마 이 긴 세월을 유지할 수 없기에 졸혼이니 휴혼이니, 새로운 가정 패턴이 생기는 거겠지.


따로 자고 함께 밥을 먹는다. 혼자 자는 것만으로 적으나마 달래진 마름.

함께는 괴롭지만 혼자는 외로운 게 인간의 조건이기에 쇼팬하우어도 '함께 혼자' 살기를 추천했다. 외롭지 않을 정도로 함께 가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결국 나 홀로 가야 하는 길이에.


남편 또한 오래된 마누라 매양 곱지만은 않을 테지. 남자라는 이유로 입 꾹 다물고 자기 앞의 삶을 묵히 참아내고 있을 것이다.





수채화물감&파스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