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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남자

by 이영희


-- 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 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예전에 어느 詩모임에서 이름을 대면 알만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날의 술값과 밥값을 내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듣기 싫어도 들어줘야 한다고.

밥값을 지불하지 않을거면서 멋모르고 독판 떠들어대는 인간은 병신--이라 했다.


때때로 자기보다 재능도 실력도 못한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그도저도 싫으면 때려치우고 나와야하는데 어디로 가야할까.


시를 쓰고 소설 쓰면서 돈벌이가 된다면 까짓껏 얼마든지 거기 눈치 볼 것 없이 그 길을

택하겠다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읽힐만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능 없는 사람의 그렇고

그런 인생은 어쩌란 말인가.

배짱 좋게 없는 돈을 긁어모아 가게를 내어 보지만 모든것이 대형으로 몰리는

인간들 심리에 구멍가게들은 빛을 보기 힘들다.


처자식을 먹여 살아야 하는 문제.

내입에 들어가는 밥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돈 벌이를 하지 못하는 나는

남편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 볼 때가 있다..

아내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일용 할 양식을 위해

탈스런 손님도 상대해야하고 긴장하며

아리고 시린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을테지.


저 위의 장석주 시인.

가롯 유다처럼 '밥'을 위해 양심을 팔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기가 얼마만큼 쉽지 않기에, 더는 비겁한 삶을 살지 않겠다고 눈물 젖은 밥을 삼키며 저토록 다짐에 다짐을 했겠는가.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쉰다.


새벽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치사함에 대해 아무리 부인을 거듭한다해도

쌀은 사야하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하는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온다.


그래, 따뜻한 밥이 내 입 안에 들어오기까지를 생각하며.... ....



아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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