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웃음과 눈물 사이
흰구름과 물고기
by
이영희
Jan 3. 2020
보들레드는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하늘은
피로해서 하늘이기를 포기했을 거라고 읊었다.
걸림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휘휘 돌고
흐르고 흘러, 새털인가 했더니 보글보글 양의 모습으로 변한다.
때론 신화 속 여신의 옷자락처럼 길게 길게 펼쳐지고, 어느새 창과 방패로 갈라서서
서로를 견주기도 한다.
창가에 누워 가만가만 흐름을 보는 나도 숨을 고른다. 그러자 흐물흐물 사나움이 풀어지더니
뭉게뭉게 사랑을 퍼올린다.
구름의 모양은 보는 사람의 마음의 형용일 뿐.
송강 정철이 읊은 구름도 이러했다.
***물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있거라 너 가는 곳 물어보자
그중 손으로 흰구름 가리키며 말 아니하더라**
말하지 아니해도 그 마음 왜모를까. 마음 닦
는
일이 쉬웠다면 구름을 가리키지 않았을 테지.
나 또한 세상사에 휩쓸려 내 마음 갈 곳 몰라,
때로는 사나운 기운을 모아 모아 소나기로
장마로 쏟아붓는다.
그리곤 먹구름 지나간 맑아진 자리에
내 마음 닮은 구름들이 다시 모이고 흩어진다.
새털구름과 양털구름을 저 푸르른 칠판에
더 많이 그려 넣고 싶은 것이 이 중생의 마음.
훠이훠이 지나가는 저 중의 속 뜻과 내 뜻이
무엇이 다를까. 속세를 벗어난 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 제 마음 하나 다스리는 일,
여기나 거기나 다르지 않다고, 걸림 없는
구름이 저 중을 대신해
답해 주는데....
..........
....................
대공원엔 크고 작은 호수가 있다.
왜가리 날고 청둥오리 쌍쌍이 노닌다.
물가에 서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살핀다.
그들은 이리저리 등지느러미와 꼬리의
유연함으로 살랑살랑 헤엄쳐 다닌다. 그러다
어느새 물속 깊이 들어가 숨어버린다.
네가 머물 곳을 아는 너를 보며 생각한다.
나도 너처럼 나를 낮추고 삶의
깊이를 더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겠다고.
물고기와 구름이 삶을 가르친다.
스승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keyword
공감에세이
심리
31
댓글
6
댓글
6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영희
직업
에세이스트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즐깁니다. 수필집 <자궁아, 미안해> 2022년 봄, 출간했습니다
구독자
309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부십니다
아담의 두 번째 갈비뼈 <데니쉬 걸>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