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은 <거미여인의 키스>와 <크라잉 게임>이다. 두 영화는 정치와 이념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동성애를 접목해 훌륭한 영화로 손꼽히고 있다.
온전한 남성으로, 여성으로 살아내기도 벅찬
세상 속에서 남자인 듯 여자이고, 여자인 듯
남자인 그들의 혼란을 누가 보듬어 줄 것인가.
몇 년 전에 <데니쉬 걸 >을 영화관에서
보았지만 어제 넷플릭스에서 다시 꺼내 보았다.
그때도 그랬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골똘해진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구원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들을 인정해야 한다. 보통사람들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살아내고 있음을.... .
영화는 실화를 재구성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들이 혼란을 겪을 때 누구에게 하소연하며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하늘을?
부모를?
사회를?
감독이 이 실화를 영화로 만들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그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들을 저 높이 있는 하늘이 아닌 주변의 우리가 보듬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었다.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만약 내 가족 중에 영화 속 주인공처럼 혼란과 고통을 겪는 이가 있다면, 우리의 선택과 감정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영화 속 아내 게르다의 심리묘사도 그렇고,
성 정체성 혼란 속 남자 배우의 연기에 빠지게 된다. 한 때 사랑했던 남편으로서가 아닌 ,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인정해주려는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관계.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빛을 발했다. 1926년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에 또 한번 놀라웠다.
줄거리는
1920년 대, 풍경화 화가로서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와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부부다. 어느 날, 아내 게르다의 발레리나 모델인 울라(엠버 허드)
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아내는 남편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남편 베게너는 그동안 숨겨왔던 이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또 다른 자신의 모습. 정체성을 되찾으려 그 시대의 열악한 의술에 몸을 던져 끝내 죽음으로 마감하지만, 남자로 죽는 것이 아닌 잠깐이나마 완전한 여자로 죽을 수 있음에 그동안의 역경이 헛되지 않음에 베게너와 게르다는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