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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눈물 사이
그래도 진달래
by
이영희
Mar 24. 2020
그제 일요일 과천 대공원은
사람과 차량들로 북적였습니다.
지지난 주만 해도 지하철은 한산했으며 공원도 썰렁했었는데
그날은 작년 봄, 그 일상으로 돌아간 듯 활기찼습니다.
모두들 마스크는 했지만 젊은 연인들은
손에 손잡고 애틋한 눈길이 곱습니다.
어르신들도 오랜만의 나들이에 움츠렸던
등이 펴지며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습니다.
얼마 만에 보는 봄다운 풍경인지요.
양지쪽 목련은 하늘 향해 꽃잎을 공양하고
음지의 꽃봉오리들은 송이송이 뽀얀 알사탕처럼
달달하게 가지 끝을 장식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비탈에 서 있는 진달래 꽃나무.
연분홍이 해마다 그렇듯이 애처롭습니다.
아직은 살짝 매운바람이 옷 속을
파고드는 날씨, 고 얇디얇은 하늘하늘한
꽃잎이라 더 그러할 것입니다.
진달래는 복숭아꽃 살구꽃과 함께
우리 정서와 밀접하여 더 눈에 밟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많은 시인들이 꽃노래를 지었지만
오늘 이 시인의 진달래만큼 아리고 쓰리게 다가오는 시어들도 없는 듯 합니다.
박팔양(1905~1988)님의
[ 너무도 슬픈 사실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중에서 발췌합니다.
......
.............
어찌하야 이 나라에 태어난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이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 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
.
.
시 필사를 마치며
정말이지 어찌하여 이 나라가, 온 세상이
이토록 아파야만 하는 걸까요. 그날 공원의
비탈마다 서 있는 저 꽃잎을 보며 사람들의
발길이 가벼움도 좋았지만 진달래의 여림.
핸폰으로 사진을 저장하다가 그만 시큰해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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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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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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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즐깁니다. 수필집 <자궁아, 미안해> 2022년 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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