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웃음과 눈물 사이
배꼽
by
이영희
Nov 12. 2020
어머니와 이어졌던 흉터에 손바닥 대어
가만가만 말을 붙여본다.
어린 날엔 우리 사 남매 천륜의 꽃타래 울타리였지.
큰오빠, 작은 오빠, 그리고 나와 남동생.
아주 작은 봉오리들이 조금씩 꽃잎이 벌어지며 타고난
됨됨이를 어머니는 알아채셨을 것이며, 때론 실망과
두드러지는 흠을 보면서 한숨으로 밤을 지새우셨지.
올해 구십인 어머니는 자신의 나이에 상관없이 사 남매 모두
육십 고개를 넘었지만 늘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눈빛으로
여전히 지켜보고 계신다. 어릴 적에 우리에게서 잠깐씩 반짝반짝했던
재능이 세상살이에 시달리며 사라진지 오래건만, 지금도 몸속 어딘가에서
활기차게 움직일 거라고 믿고 싶으신가 보다.
아무쪼록 우애 있게 지내길 그때나 지금이나 얼마나 소망하시는가.
하지만 머리가 여물어가며 자신들의 짝을 만나 결혼을 하면 왜, 왜
낮말과 밤말이 달라져야 하는지. 어여쁘던 꽃타래는 시들시들해지고 점점
높아지는 담장들로 때때로 사방이 어두워지곤 했었지. 그럴때마다 어머니는
우리 자식들이 남다르지 않은 그저그런 인간이라는 사실에 아리고 쓰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제 반백의 사 남매는 안다. 자기 자식을 알토란같이 키워 혼인을 시키고
새로운 식구들을 맞이해보니 새가 듣던 낮말들과 쥐가 들었던 밤말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그중에 어느 집은 아직도 한심한 감정 놀음으로 살아가지만
어쩌랴, 타고난 본성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속상하고 텁텁했던 시간들이 찾아오면, 나는 어머니의 자궁을 떠올린다.
그 안에서 어머니의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우리에게 유전된 것들.
그리고 안방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아버지 어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
요 작은 흉터 속에 얼마나 오묘하며 큰 우주가 담겨 있은지를 새삼 떠올린다.
오늘, 어머니를 생각하며 두서없는 이 글을 맺는다.
아크릴
keyword
심리
감성
27
댓글
7
댓글
7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영희
직업
에세이스트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즐깁니다. 수필집 <자궁아, 미안해> 2022년 봄, 출간했습니다
구독자
310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조심조심
가지치기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