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마른 공기

by 이영희


장마 같은 비와 황사로 시야는 아득하고

달큼한 꽃향이 바람결에 코끝을 스치는

그런 계절이건만 하루 건너 쏟아지는 비


어제, 그제도, 생각의 꼬리만 길어졌다

책도 안 잡히니 텁텁한 날씨 탓을 하면서

가라앉는 기분을 이곳에서 오늘 내 안에서

일어서고 스러지는 단상들을 엮어본다


적당 하다와 중도라는 말 뜻에 합당하려고

무던히도 세월을 깎아냈으나 그렇듯이

나의 욕심은 생각의 꼬리만큼 길어지곤 했지

적당한 결핍이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돈이 너무 많으면 돈에 치여 구속되고 그것이

너무 없어도 살고자 할 의미가 힘을 잃는다


큰돈이 손에 쥐어지면 결핍에서는 잘 보이던

인간적인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된다 반대로

큰 빚을 지게 되면 내면에서 차오르면 빛이

사라지고 만다 이 애매한 삶의 아이러니들

많든 적든 일용할 양식과 내게 유한된 시간

비 그치고 나면 햇빛에 잘 마른 공기 같은

기분을 유지하려 애쓴다 나 자신에게 상냥하게


그제 저녁 남편은 폰카메라로 나를 찍었다

늘 보는 일상일 텐데 그날따라 마누라에게서

어떤 기분을 받았을까 편안함과 안정감인가

그 순간이 남편에겐 아주 잘 마른 공기였을까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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